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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상처와 모든 것을 지닌 채로 With Scars and All

by 봄날들판 2015. 5. 26.
상처와 모든 것을 지닌 채로 With Scars and All

에릭 임멜 예수회원 on April 7, 2015

흉터는 결코 없어지지 않겠지.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때 흉터가 그대로 몸에 새겨진 채 부활하셨다. 

출처 : https://thejesuitpost.org/2015/04/with-scars-and-all/

그녀의 가슴 오른쪽, 쇄골 바로 아래에는 1급 흉터가 있다. 열두 해 전에 그 자리에는 막 꼬맨 절개 자국이 있었는데 부풀어오르고 부자연스러운 거기에는 가슴 안쪽으로 연결된 튜브가 연결된 관이 있었다.

그녀는 대학 신입생 때 성탄절 방학 때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원치 않는 바였으나 봄 학기에 학교를 쉬었다. 당시 나는 대학 2학년이었다. 그녀에게서 파란 크래용으로 색판지에 쓴 편지를 받았다. 지금은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심심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서로 편지따위는 주고받지 않았으니까. 내 누이는 기숙사 침대에 눕고 싶어 했고 밤늦은 시간에 피자를 먹고 싶어 했다. 어릴 때 쓰던 침대와 집에서 만든 집밥 말고 말이다.

격주마다 있는 화학치료 요법은 큰 타격을 주었다. 구멍은 그녀의 생명을 구할 화학약품이 들어갈 구멍의 역할을 했다. 누이동생은 쉬거나 책을 읽거나 기도를 했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했는데, 충분한 정도보다 이상이었다. 1월 말에 있는 생일 파티가 지나자마자 우리는 동생의 얇아지는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다. 그 일이 있기 바로 전에 그녀는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내 생각에 어머니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러나 그것도 어쨌든 없어질 테니까.”라고 말씀하셨다. 그 머리카락이 마지막으로 조금 남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떠맡았다. 가위로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머리를 자를 때 우리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 일을 제대로 해내셨다. 여동생에게 여전히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어느 날 화학요법을 위해 병원에 함께 간 일이 기억난다.친구 폴도 함께 갔는데, 동생이 화학요법 뒤에 항상 겪는 구토를 견딜 수 있게 하려고, 착한 큰오빠와 그의 친구가 으레 그러듯이 우리는 시끄럽고 헛구역질이 나게 하는 소음을 냈다. 누이동생이 말했다. “고마워.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기쁘네.” 몇 시간 지나서 동생을 집에 데려다 주었는데 아버지가 차까지 우리를 마중하러 나오셨다.부서질 듯하면서도 투지에 넘치는 동생은 혼자 힘으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는 그래도 그녀가 쓰러지면 바로 자세를 잡아주려고 어쨌든 등에서 조금 떨어져서 손을 두었다.

그날 오후 늦게 동생은 아버지의 흔들의자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그녀의 흉터를, 그리고 그 아래 어색하게 튀어나온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라도 효과를 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흉터가 없어지기나 할지, 모두지 알 수 없었다.

***

우리는 방금 그 이야기(예수님의 부활)를 다시금 들었다.(이 글은 4월에 부활 대축일 직전에 쓴 글이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흉터를 생각하고 있다. 그 장면을 묵상할 때면 나는 본다. 그분의 어깨 위에 놓인 다듬지 않은 나무를, 그분의 피부에 박힌 가시를, 가시관에서 머리 선 아래로 난 깊은 상처들을, 땀과 더러움과 눈물을, 깨끗한 천을 가지고 부드럽게 그분의 피와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 드리는 한 여인을, 셀 수 없이 넘어지고 세 번 쓰러지시는 모습을, 한 팔로는 그분을 들어 올리고 다른 한 말로는 나무를 들러 올린 힘센 사람을. 언덕 위까지 이어지는 그분의 먼 길을 새겨진 먼지의 흔적이 남은, 그분 뒤로 이어진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러서도 휴식이 없었다. 못 박히고 범죄자로서 십자가에 올라, 예수님은 한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다. 그분은 마침내 머리를 떨구셨다. 그들은 그분을 내리게 하여, 우는 여인의 팔에 뉘이게 했다. 그분 옆에는 아무 말 없이 남자가 눈에 가득 두려움을 띄고 서 있었다. 나는 그분을 거기에 두었다. 손과 발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갈비뼈 사이에는 뚫린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는 그분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남겨 둔 표시가 보일 뿐이다. 그분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분을 모욕하였다. 그분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시더라도,아무도 그분을 전과 똑같이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분은 그 상처들을 영원히 지닐 것이다. 나는 상처가 그럴 만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분이 돌아가셔서 우리가 더 안전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

우리는 모두 삶에서 받은 흉터가 아로새겨져 있다. 나에게도 1번 흉터가 있다. 왼손 엄지 첫 번째 마디 바로 아래에 있는데, 사순 시기가 시작되기 전에 하는 마디 그라 파티에서 손톱에 아주 날카로운, 진홍색 프레스를 찍혔다.오른손 검지손가락에도 흉터가 있다. 초승달 모양의 그 흉터는 작은 이동 가옥에서 맥주병을 열려다가 생겼다.케모포트(chemo-port)나 십자가형처럼 심각한 건 없지만 작은 유리 조각이 몸속을 떠돌고 있다. 그것 말고도 흉터가 십여 개는 더 있다. 흉터는 어디에나 있다.

흉터는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다. 흉터는 우리가 잊고 싶었을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흉터는 살아남음의 이야기,구사일생과 나쁜 결정의 이야기, 가슴아픔과 안간힘의 이야기, 고통과 두려움과 희망없음의 이야기들을 말해 준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자신의 길을 가다가 온통 지친 채로, 그러나 더 많은 생명력과 더 깊은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채로.

부활하시고 나서도 예수님은 흉터를 그대로 지니셨다. 흉터는 고통이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상처를 전혀 입지 않은 채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고통과 그리고 그분의 사랑 속에서, 우리 몸에 남은 흉터는 점점 더 견딜 만한 것이 된다. 그것은 거룩함과 연결되게 된다. 그들은 거룩해지고 그분의 사랑은 진짜가 된다. 그분의 흉터는 우리가 따르도록 길을 내어 주었다. 손을 내밀어 그들을 만나고 그분이 하느님임을 알게 하도록, 그분이 정녕 그 흉터를 지니셨고 그분의 실제는 우리와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길을 내어 주었다. 그분의 흉터는 그분이 겪으신 고통뿐만 아니라 그분의 치유하시는 사랑도 일깨워 준다.

내 누이의 흉터는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구멍은 11년 전에 없앴지만,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녀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새로운 생명이 다가오는 중이다. 흉터와 모든 것을 지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