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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먹고 기도하고 의심하라 : 사랑, 그 유혹과 부르심

by 봄날들판 2015. 7. 15.
먹고 기도하고 의심하라 : 사랑, 그 유혹과 부르심

Eat, Pray, Doubt: Temptation and the Call to Love

글을 진짜 잘 쓰시는 분. 이미지를 붙잡아서 이야기를 푸는 걸 참 잘하시는 듯하다.
아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다시금 확인한 어느 예수회 수사의 이야기.

에릭 임멜 Eric Immel 수사 SJ

예수회를 떠나면 어떨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미사에서 감사 기도가 막 끝날 무렵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소리가 들릴 때, 내 차도 아닌 공동체에서 함께 쓰는 차의 문을 열고 어지럽혀진 모습을 보았을 때, 아니면 혼자서 잠에서 깰 때면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책을 읽는 중이었다.나는 그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한다. 그 책을 즐겨 읽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그 책에서 식별과 발견에 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다. 책 앞부분에서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가족 모임에서 겪은 체험을 이야기하며,주변의 모든 사람이 거치는 과정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한다. 모든 이가 여정이 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으니까. “처음에는 아이지. 그러고는 십대가 되고, 젊은 유부녀가 되지. 그 뒤에는 부모가 되고 은퇴를 하고 그러고 나서 할머니가 돼. 모든 단계마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같은 내용을 내 삶에 도입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이지. 그러고는 십대가 되고 젊고 혼란을 겪는 미혼남이 되지. 그러고 나서 젊은 예수회원이 되고, 중년의 예수회원이 되고 그다음은 나이 든 예수회원이 되는 거야.” 내 방의 울퉁불퉁한 트윈 베드에 앉아 다리 사이에 베개를 고정하고 하이빔의 헤드라이트를 켠 채 대중 문화의 현대 고전을 읽다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내 삶의 이야기 일부가 텅 빈 채 떠다니는 듯했다. 인생이 이미 다 끝장 난 기분이었다. 내게는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예수회원일 뿐이다.

***

그녀는 이름이 남자아이 같다. 두 머릿글자는 부모가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의 아름다움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풀하우스>에 나온 도나 조 탄너의 DJ처럼 말이다. 그녀는 내가 여름 동안 지내는 마을의 정육점에서 일한다. 나는 동료 예수회원과 함께 거의 매일 그 가게로 가서 두껍게 썬 베이컨 하루치와 연습장과 불로러, 그리고 오래된 체다치즈를 구입한다.

나는 그녀가 좋다. 그녀에 대해서는 이름과 그 가게에 가족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그녀는 계산대에 서고 낡은 대학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환하게 웃는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앞둔 어느 날 가게에는 사람이 붐비고 중부 위스컨신의 분위기로 연휴를 앞둔 긴장감이 달아올랐다.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았고 다른 이들이 끼어들기도 했다. 해적 복장을 한 사람이 삼각뿔 모자의 꼭대기에 종이타월을 올려놓은 채 계산대로 다가왔다. 그녀가 물었다. “헤이 해적 아저씨, 종이 타월 가지고 뭘 하시려고요?” 해적이 말했다. “그르르, 내 머리에 현상금이 걸려 있거든요.”

우리는 상품을 집어들고 문 밖으로 향했다. 내가 말했다. “조만간 또 봐요.”

“기대할게요.” 그녀는 다정하게 말하고는 다음 손님에게 고개를 향했다.

우리는 길을 내려가다가 자동차 정비점에 들어갔다.기다리는 동안 오래된 자동차 광고 나오는 문구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날 네 가지는 : 결혼식 날, 새 집을 산 날, 아이가 태어난 날,그리고 올즈모빌 한 대를 신차로 사는 날.’ 내게는 이런 날이 결코 올 수 없을 테지. 나는 결혼 서약을 주례할 수는 있겠고 아기 몇 명에게 세례를 줄 수는 있겠지. 예수회 공동체를 새로 구입할 때 그 일을 총괄할 수도 있겠고, 공동체에서 쓰는 자동차를 도요타 코롤라나 캠리의 함대로 싹 바꾸는 일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위안을 가져오도록 가능케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그게 나한테 항상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

몇달 전 일이다. 나는 검은 클러지 셔츠를 입고 로만 칼라를 한 채 전철을 타고 가는 중이었다. (아직 서품을 안 받은 수사인데 미국은 이렇게 입을 수 있는 듯-역자 주) 오랜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는 금요일 저녁 식사에 늦어지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한 정거장 남겨 두었을 때 전철이 연착되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흘렀다. 마침내 전철 차장이 안내 방송으로 열차 한 량에서 응급 의료 사항이 발생하여 엠블런스가 올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 뒤에서 젊은이 몇몇이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저 사람들 전철에서 내리게 하면 안 되나? 에이, 내가 이래서 전철이 싫다니까. 우버 택시를 탈 걸 그랬나 봐.’ 짜증이 나서 그들에게 그다지 따스하지 않은 표정으로 한번 스윽 보고는 승강장으로 나왔다. 바로 그때 옆 객차에 있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손짓했다.

“신부님, 여기 좀 와 주실래요? 이 사람이 상태가 안 좋아요. 방금 발작이 일어났거든요.” 나는 아직 사제가 아니라고, 약속에 늦어졌다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설명하는 일을 뒤로 제쳐두고서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채 가만히 울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쉬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지쳐 있었다. 누더기를 입고 있었는데, 어둡고 깊은 주름이 새겨진 얼굴에는 거무스름해 보이는 수염이 덮여 있었다. 그러나 나를 본 그는 좀 편안해하는 것이 얼굴에서 느껴졌다.

“신부님, 정말 무서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숨을 내쉬세요. 응급차량이 오는 중이니까 다 괜찮아요.”

그가 내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만지고 그는 내 허리를 잡았다. 그가 눈을 감자 나는 기도를 했다. 그러고 나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일을 하는 모습을 무진장 많이 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이마에 키스를 했다.

구급 의료대원이 도착하자, 나는 엠블런스까지 바퀴 달린 들것을 따라 걸었다. 그들은 급하게 그를 데려갔고 나는 내 길을 계속 갔다. 친구 집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새로 산 그 집, 아내와 예쁜 두 아기가 있고, 차고에는 차가 두 대 있는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때 문득 나의 자리를 깨달았다. 걸어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투쟁과 소란스러움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예수회의 사제와 수사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나는 비록 약점과 혼란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그 일을 기꺼이 바라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 일을 하기란 항상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말이다,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 예수회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