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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번역 / 갑작스런 슬픔과 나를 둘러싼 세상

by 봄날들판 2016. 2. 4.
Sudden Sadness and the World Around Me
갑작스런 슬픔과 나를 둘러싼 세상

복사나 인용은 사양합니다.

2016 1월 26일 업로드
우리 인생 사는 게 별게 아니다.
내일이면 세상이 무너질 거 같고 내 앞에 시꺼먼 게 단단하게 가로막는 것처럼 보여도
그냥 좋은 친구가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으면
그깟 슬픔이나 우울증은 또 잠깐씩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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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에릭 임멜 SJ 예수회원

며칠 전 나에게 갑자기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그런 감정이었다. 나는 친구와 큰 의견차가 몇 가지 있었다. 담배를 막 끊을 때의 새로운(그리고 아마 열다섯 번째지 싶은데) 고통이 엄습했다. 학기가 시작하려는데 여전히 논문이며 읽어야 할 책으로 머리가 지끈했다. 다가오는 5월이면 사람들과 헤어질 텐데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외로움 타는 게 두렵다.그리고 다음 해에 세상의 어디에 살고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성탄과 연말에 음식을 절제하지 않았더니 살이 찐 듯 느껴지고 자주 피곤함을 느낀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된통 향수병을 앓는다. 감당하기에는 참으로 큰 고통이다. 할 일도 참으로 많다. 부딪혀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화와 분노, 혼란과 두려움이 내 안에서 버럭 일어나려고 언제든지 태세가 되어 있다. 이러한 슬픔은 그 갑작스런 흉포함에 놀랍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자라온 것이다. 그 각각의 요소들의 정점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지만,그러나 이것이 합쳐지자 슈퍼 빌런이 되어 날카로워진 발톱, 소이탄, 심술궂은 냉소로 나를 갈가리 찢어 놓을 태세를 갖추었다.

나는 원래 쾌활한 사람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느끼면 안 되는데,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었고 참 힘들었다.

***

공동체에서 어떤 날은 매일 미사에서 성경을 읽을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종종 성경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날 독서를 한다. 이 말은 곧 예수회원들이 전략적으로 가능하면 성경에서 먼 자리에 앉는 걸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나라면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성경을 미리 읽을 기회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성령께서 내가 그날 성경을 발음이 틀리지 않고 잘 읽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소망할 뿐이다. 다른 예수회원들이 세우는 전략도 대동소이하다. 
내가 슬픔에 옴짝달싹 붙들린 그날도, 어느 불운한 예수회원이 일어서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말씀은 성경에서도 가장 안 좋은 경우였다. 아비엘, 츠로르,아피아처럼 그 정확한 발음이 알려지지 않은 단어가 불쑥불쑥 나오는 구약 성경 구절이었다. 몸 조심하세요. 하지만 그 회원은 어떤 두려움도 어떤 절망의 낌새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마침내는 무릎을 꿇었다. 그는 곁눈길로‘살리사’를 보았는데 철자와 발음이 워낙 이상해서, 땅에 떨어지기 직전인 그의 성경 인명 지식으로는 거의 이겨 낼 수 없는 시험에 든 것이다. 그는 잭 블랙 같은 스타일로 고함치는 기쁨에 겨워, 잠깐 멈추었다가 ‘살리사!’ 하고 거리낌없이 외쳤다.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이 일었다.나는 방 안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는 내 슬픔을 일으킨 사람으로 이미 탓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한 건 누구라도 탓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내게는 그들의 반짝이는 눈과 환한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내 슬픈 마음은 아름다움과 희망이 그 대단한 자만감에 상처를 입히자 사그러들었다. 아마도 이것이, 곧 아름다움과 희망이 결국은 승리를 거둘 것이다.

***

며칠 전 밤에 나는 어느 모임 사람들과 함께 시카고 도심에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노숙자를 돕고 대화를 나누는 활동을 한다. 미시간 에비뉴와 워커 드라이브가 만나는 코너에서 우리는 어느 할머니와 두 손자들과 마주쳤다.내가 전에 본 적이 있고 이름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문 닫은 까페의 앞에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손자들은 장갑도 없었다. 우리는 가진 음식과 옷을 주었고 쉬운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호랑이 울음소리도 내고, 원숭이 흉내도 내고 코에 뿔이 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를 알려 주려고 손가락을 쥐어 보였다. 아이들은 밝게 웃었고, 그 작고 빛나는 미소와 맑은 눈이 매서운 날씨와 아주 대조를 이루었다. 늘 우울해 있던 할머니도 아이들을 향해 미소지었다. 절망이나 가난함이 주변에 널려 있지만 그럼에도 즐겁게 또 기꺼이 사랑하면서 완전히 다르게,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중독, 상실, 외로움, 피곤함이 뒤섞인 고통에 대항해 싸우는 건 대개는 그저 나일 뿐이고, 그런 세상이 바로 내가 슬픔을 안도록 된 곳이다. 나는 이런 것에서 도망쳐 갈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슬픔을 안고 있을 때조차도 세상은 그것을 구원한다. 성경 때문에 웃고 코로 경적을 울릴 이유를 알려 주면서 말이다.

어떤 슬픔은 잠깐 왔다 금세 가 버리지만 어떤 슬픔은 더 오래 계속된다. 내 슬픔은 여전히 매달려 있지만 그렇지만 미소는 빛나는 햇빛을 비출 수 있으니 나는 기쁨을 선택하련다. 도로시 데이가 말한 ‘긴 외로움’은 사랑으로,그리고 친구들로 해결된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열기만 하면 내 주위에 가득하다. 그렇다. 나는 슬프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