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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성찰) 부활초를 나르다

by 봄날들판 2016. 5. 9.
부활초를 나르다

에릭 임멜 sj. Eric Immel 수사님이

부활초를 들면서 한 성찰 이야기
 

녹은 촉농이 초에 고인다. 커다란 초에는 심지가 검게 변하고 불도 꺼질락 말락 하다가 어두운 연기가 공기 속으로 흩어져 간다. 나는 천천히 걸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초의 무게 때문에 빨리 가지 않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 초를 잡은 손은 떨려오고 팔뚝은 피곤하고, 어깨는 타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뜨거운 촛농이 내 벗겨진 머리, 땀에 젖은 머리 위로 흘려 내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마침내 초를 원래 자리에 가져다 두고 나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밤은 더는 초를 들지 않아도 된다.

 

***

성당 밖에서 나는 켜지 않은 초를 들고 서 있다. 작은 불이 당겨지자, 그 연기가 나는 자취를 눈길로 따라가다가 문득 여름이 떠오른다. 타는 나무에서 나는 냄새가 새하얀 복사복에 배어들었다. 우리는 시카고의 호숫가에서 불과 5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고 바람의 도시 시카고에 부는 바람은 부드럽긴 하지만, 쉬는 법이 없다. 사제가 기도를 바치고 그러고 나서 가는 심지에 붙인 불을 부활초의 심지에 붙인다. 천천히 불이 붙는다. 나는 이른 봄바람이 만에만 머물고 여기에는 불지 않도록 손으로 초의 꼭대기를 보호한다. 내 뺨으로 기울어진 불꽃이 얼굴 피부에 서서히 열기를 내뿜는다. 피부가 델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불을 가까이 나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뜨거웠다.

회중이 둘러싸고 모두 함께 우리는 어둑어둑한 데로 나아갔다. 앞에는 단 하나의 초에서만 빛이 난다. 그 빛은 어두컴컴한 성당에 빛을 흩뿌리고 그 뒤의 공간을 채운 사람들의 손으로 퍼져 나간다. 성당 내부가 온통 거룩한 불로 가득 찬다. 처음으로 부활초를 촛대에 내려놓을 때 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

 

비 오는 날이나 바람 부는 날 담뱃불을 붙이는 일은 늘 참 힘들다. 나는 몸을 접어 구부리고, 잠깐 곱사등이가 되어 불을 피우기 위해 힘겹게 싸운다. 기름에서 튀어나온 불꽃이 던져지지만 그것을 잡기란 힘들다. 라이터나 성냥에서 켠 불은 잠깐 덩실대다가 거듭거듭 꺼져 버린다. 돌풍과 물에 불꽃이 비실대는 것은, 중독이라는 깊은 병에 자연 자체가 대항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럴 때면 나는 이 불에 나를 붙잡아 두는 것은 무엇일까,하고 멈추어 생각해 보곤 한다. 이 잠깐의 안도의 불빛은 거의 항상 뉘우침과 후회로 이어진다. 친구와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피는 것은 다르다. 그들은 거기에 참여한다.보기에도 멋지다. 그것은 도피의 다른 원천들, 곧 시끄러운 음악, 술, 추파 던지기, 유혹하는 사랑의 가능성을 보완해 준다. 고독의 고통을 피하는 것, 불완전한 삶, 깨닫지 못한 갈망, 따라다니는 외로움과 함께 오는 어두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연기를 없어지게 하는 것은 내 머릿속을 휘젓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바람이 휘몰아치고 비가 쏟아졌다면 나는 단념하고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니면 불꽃이 넉넉하리만치 오래 타기만을 바라는 채 그 시련을 견뎠을 것이다.

***

아침에 태양이 호수로 밝은 빛을 비추면 우리는 부활 성야 미사의 리허설을 한다. 나는 성당의 앞에 서서 내가 든 촛불을 든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성당의 뒤편에 있는 샘까지 천천히 행렬하도록 지시를 받는다. 그 뒤에 세례를 받을 다섯 사람이 따라올 것이다.

내가 나르게 될 초는 크기나 전례에서 아주 중요하다. 무겁고 모양새가 투박하다. 그 초는 단순히 성당 안을 몇 번 왔다갔다 하기만 하지 않는다. 불을 켜고, 행렬을 하고, 높이 들어 올리고, 내리고, 균형을 맞추고 물에 담근다. 나는 지시를 헛갈려서 내 일을 하는 데 온통 마음을 모은다.

그렇지만 전례 해설자는 세례 받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준다. “잊지 마세요. 이 초와 그 불꽃은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이 초를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불은 예수님이다. 우리는 부활의 사람들이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

 

우리는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나를 때가 있다. 어떤 것은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나른다. 궁극적으로, 나는 할 말이 있다. 그것은 나를 붙들고 있는 것에 관한 질문, 나를 죽이는 나쁜 버릇에 관한 것이 아니다.내가 실수를 할 것이고, 잠깐 동안 내가 담당 아래 있는 불을 꺼지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 곧 사랑을 나르는 기쁨이다. 그것은 내가 깊이 믿는 것에 의해 내 마음에 불붙은 불꽃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옮긴다. 나는 그분의 빛의 전령으로서 봉사한다. 그 일은 쉽지 않을는지 모른다. 땀이 날 수도 있고 떨거나 뜨거운 촛농을 흘릴 수도 있으며 틀린 길로 갈 수도 있다. 물에 너무 빨리 잠기게 하거나 통째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건 실은 촛불이 아니라 밤에 빛나는 거룩한 빛이라는 것을 잠깐 잊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불을 전하기도 전에 촛불이 꺼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초가 비추는 빛은 내 안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살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꺼지지 않는다.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