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를 모아 보자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by 봄날들판 2016. 6. 19.
예전에 전숭규 신부님께 직접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글에서 접하니까 또 새롭다. 
이 글을 읽으면 늦가을 연천의 한적한 분위기, 은행나무잎이 곱게 물든 성당마당, 국화로 꾸민 성당에서 친구랑 열심히 사진 찍던 생각이 난다.
국화를 어떻게 하면 크게 키울 수 있는지 열성적으로 설명해 주시던 신부님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전숭규 신부/ 의정부교구 연천성당)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 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6-7).

지난 해 저희 성당에서는 성탄미사 강론을 말따 할머니가 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말따 할머니는 칠순이 넘으신 분입니다.

제 기억 속에 떠오르는 말따 할머니의 강론은 이렇습니다.

말따 할머니는 시골의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하도 가난하여 농가의 셋방을 얻어 살았는데 우연히도
주인집 아주머니와 같은 달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당시 농촌에서는 아이들을 같은 달에 한집에서 낳으면 한 명이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말따 씨에게 집에서 나가서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때는 12월, 한겨울 이었습니다.
가난도 서러운데 아이까지 밖에서 낳아야 하는 말따 씨는 자신의 신세가
한없이 서러웠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집에 들어갈 곳도 마땅치 않아서 말따 씨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찾아 간 곳은 허름한 외양간이었습니다.
외양간에 들어서자 이내 통증이 오고 급기야는 산파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말따 씨는 아이를 낳고 산고로 인해 한동안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참을 지나서 등에 온기가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소가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습니다.
아마도 소는 한겨울 허름한 자신의 외양간을 찾아온
손님이 불쌍해 보였나 봅니다.
말따 씨기 울면서 "저리가"하고 소를 밀면 얼마 있다가
또다시 소가 등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싸늘해졌습니다.
"가난한 부모 때문에 아이가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따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의 온기가 느껴지고 한동안 죽었던 것 같이 싸늘하던 아이가
다시 깨어났습니다.
말따 씨는 그렇게 서글프게 아이를 낳았답니다.

이제 그 아이가 자라나 어머니가 되었고, 이곳 유치원 원장입니다.
성탄미사 때에 어머니 말따 시는 강론을 하고 그 딸은 성가대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손녀는 반주를 하고 손자는 제대에서 복사를 섰습니다.

가끔은 예수님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성서의 말씀이 실감 있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 가난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탓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따 씨의 말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2천년 전, 참으로 예수님은 가난한 구유에서 태어 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