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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모아 보자

김상용 신부님의 시

by 봄날들판 2017. 1. 7.
이 블로그에 예수회 김상용 신부님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이 계셔서
시도 올려 봅니다.
하느님으로부터의 허기에 수록되었고요
읽다 보면 많이 슬퍼지네요.
여기 수록된 시가 대개 유학 생활하면서 쓰신 거라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아마 사제품 받기 전에 쓰신 거 같고요.
대강 그런 배경은 참조하시길. 
뭐 꼭 공부 때문에 괴로운 건 아니겠습니다만. 


래리 신부님?

 

새벽 2시 반

낯선 손님 방에서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여드레 째.

 

지구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에서

라티노식 서툰 영어로

애절하게 한 사제를 찾는

목소리가 늙은 여인의 긴 한숨.

 

래리 플레니건 신부님을 찾는데요.

나에게 영혼을 돌려 준.

 

저 먼 곳의 정체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몇 시냐는

나의 절박한 불면의 짜증섞인 호통에도

이 칠레의 여인은 아랑곳없이 간절하다.

 

부탁이에요.

래리 신부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

나에게 영혼을 돌려 준.

 

나는 30년도 넘은 웨스턴 일렉트릭시 전화기 수화기를 무식하게 끊고

다시 수화기를 들어 그냥 바닥에 내려 놓은 채 침대로 가 누웠다.

불면은 더욱 가중되었고 정신은 더욱 혼미해져 갔다.

 

아침에 부은 눈으로 일어나

래리라는 신부를 찾았다.

뜻밖에도 그는 사망한 지 칠년이 지났다.

그는 지금 내가 머무는 이 손님방에서 스러졌다.

나는 불면의 충혈된 눈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와

무식하게 내려져 있는 수화기를 다시 제자리로 돌렸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까닭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래리 신부님,

칠레의 독재 시절에

한 여대생에게 가해진 총부리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군인 한 명을 죽여야 했던 사제

추방된 이후에 평생을 거쳐

사제직을 수행하지 못했던 불행한 사제

 

새벽 2시

오늘도 어김없이 남쪽끝 칠레에서

잘못 걸려오는 전화벨이 울리게 되면

나는 수화기를 들고 가뭇없이 그렇게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게다.

 

이상하게 잠이 쉽게 드는 밤

먼곳에서 아련하게

전화벨이 울려 온다.

 

래리 신부님?

 

 

하느님으로부터의 허기, 저자 김상용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