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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부르심과 (지연된) 응답

by 봄날들판 2017. 4. 1.

부르심과 (지연된) 응답

Call and (Delayed) Response

글쓴 이 : Eric Immel SJ  

Jesuitpost

에는 글쓰는 이마다 맡은 주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수사님은 대중 음악에 대해서 쓰고

어떤 수사님은 정치 이슈를 위주로 쓴다.

나는 그동안 에릭 임멜 수사님이 일상을 주제로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고 생각해 보니 주제가 ‘성소’인 것 같다.

오늘도 역시 주제는 성소이다.

고민하다 고민하다 수도회에 늦게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번 수사님이 글을 썼는데, 

부르심과 결정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문제니까. 그 결정 앞에서 진땀을 흘리는 문제니까.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30대의 성소자라면,

지금 망설이고 있다면

그 수도회에 일단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전화를 해 보시길.

아직 안 늦었으니까

. 글 출처 : https://thejesuitpost.org/2017/03/call-and-delayed-response/----------------------18년 동안 하루도 그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우리가 지금 좀 늦어지긴 했지요. 그래도 지금이 꼭 맞는 때 같아요.” * * * *

내가 타고 갈 비행기가 출발이 45분간 지연되었다.

그 방송이 나오던 순간에 나는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B23게이트에 줄을 서려고 어깨에 맨 백팩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로 달리던 중이었다.

그렇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 작은 목소리 덕분에 시간 여유를 얻었다.

직장에서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전철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서 있었고 핑크색 여행 가방을 끌고 가는 소녀들을 앞질러 가며 무빙워크를 뛰어왔는데,

이 모든 게 멈춘 것이다. 45분간 지연된다니, 그 시간 동안 무얼 하지?

그날은 파트리치오 성인의 축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바(Bar)로 가서 기네스 한 병을 시켰다.

바에는 여행자가 북적북적했다.

탁자에 자리가 빌 즈음 바텐더가 내게 가득 든 맥주 한 잔을 건네 주었다.

나는 한 손에 흑맥주를 조심스럽게 들고 다른 손에는 맥팩을 든 채 어느 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커플이 있었다.

그들이 미소 지으며 “같이 앉으시죠.”라고 권했다.

젠과 잭은 나이가 마흔과 서른아홉이다.

그들은 서로 결혼하려고 약속한 사이다.

“칸쿤에서 관광지 결혼식을 하려고 가는 길이에요.

추운 데서 결혼식을 하기에는 이젠 나이가 있어서요. 하하.”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들은 18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한다.

둘이 처음 만난 곳도 자주 가던 어느 바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전에 서로 약혼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젠이 파혼하자고 말을 꺼냈는데 젠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정이 있었다.

그녀는 잭이 주는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런 사랑을 받기에는 제가 보잘것없다고 생각했어요.”

젠이 한참 말을 멈추었다가 입을 열었다.

젠과 잭은 결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배우자는 둘 다 인정하듯이,

잭의 표현을 빌리자면, ‘--’였다.

그들은 어쨌든 멀리 있는 18년 동안 매일같이 서로를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 둘 다 ‘쓰--’와 이혼을 했고 그러고 나서 어느 날 밤 젠이 잭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그가 떠올랐다며 시간이 되면 혹시 한 번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났고 일 년 반이 지나 다시 약혼을 했다. “멕시코식 결혼식을 곧 할 거예요.”

그들은 한참 전에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랑은 기억과 시간 속에 계속 이어져 있었다.

늦어지기는 했지만 버려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 * * *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방학 때 나는 어느 봉사 캠프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처음으로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젊은 사제인 존 신부님이 그 피정에 우리 그룹을 동반해 주셨는데,

마침 미사에서 그분은 악담을 하셨다. ‘s’로 시작하고 ‘a’로 끝나는 그 단어를 들으니(무슨 단어인지 모르겠습니다.-역자 주)

배를 걷어차이는 느낌이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분이 강론하면서 악담을 하실 수 있다면, 나도 언젠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걸.’ 나는 존 신부님의 모습에서 무언가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악담을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는 열정적이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원했다.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떤 식이로든 매일매일 떠올랐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예수회에 입회 신청을 하려고 진지하게 고려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조용한 때, 가장 순수하게 나인 때가 되면,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고 부르심을 받기에 합당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또 가장 분주한 때에는 글을 쓰고 모임에 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그러느라 앞날을 찬찬히 생각하고 무얼 결정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거의 8년 동안 계속 다른 일을 하며 지냈다.

사제가 되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계 속에서 도전을 받고 교육자의 월급으로 겨우 살아나가고 하느님이 과연 계시기나 한 걸까 의심하는 생각이 들 때도 그 생각은 머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하루 일을 마치고 지쳐 있으면서도 기분이 좋을 때,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사제직을 추구해 보지 않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 년 반이 지나고 나서,

부모님이 나를 차로 데려다가 내가 처음으로 살게 될 예수회 공동체의 옆문 앞에 내려 주었다. “때가 된 거다.

아들아.”

하루밤을 묵고 다음 날 떠나기 직전에 아버지가 내 어깨를 치면서 말하셨다.

사랑으로의 부르심이 몇 년간 늦추어진 것이다.

* * * *

삶의 중요한 결정을 왜 곧바로 하지 않는가?

젠과 잭은 오래전에 서로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집와 아이들, 그리고 둘이 같이 벌어서 관리하는 두둑한 통장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신학교에 갔더라면 스물여섯 나이에 사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제직을 준비하는 나와,

두 번째로 결혼하기로 약속한 커플인 우리는 그렇게 공항의 아일랜드식 맥주집에 있었다.

모든 것이 지연되었다.

인생에서 완전한 부르심은 완전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개는 우리가 그게 드러나도록 내어 주지를 않는다.

우리가 그 완전함을 가로막는다.

거기에 맞서 싸우고,

그것을 의심하고,

할 수 있는 한 멀리 도망간다.

그렇게 몇 년을,

또 몇 년을,

그리고 몇 년을 그 부르심에 꺾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부르심이 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진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게 된다.

잭이 말했다.

서로 놓쳐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 때도 가끔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여기 이 여자의 손을 잡고 함께 있어서 기뻐요.

지금이 딱 제 때예요.”

45분 동안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나서 나는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B23게이트를 향해 갔다.

분명 조금 늦어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있어서 할 곳에 결국 이르렀다.

 

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jjv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