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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불타는 마음

by 봄날들판 2017. 4. 27.

불타는 마음(A heart on fire)

에릭 임멜 수사
이 글은 jesuitpost에 실린 것은 아니고 예수회 미국 관구 중서부 관구 홈페이지에 실렸다.
jesuitpost에 글 쓰기 전의 짧은 단상인데 주제는 성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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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넉 달 동안 나는 사우스 다코다 주 로즈버드에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 노인들의 생활 공동체에 봉성체를 주러 갔다. 내가 방문하는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신앙이 깊은 분들이다. 그들은 로즈버드의 원주민 보호구역의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먼 길에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에 오고 또 떠난 예수회 사제들을 알고 또 사랑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자라기를 원하는 마음이 다들 깊었다.

봉성체를 하면서 알고 보니, 할머니들의 친구와 가족 가운데 다수가 인근 성당의 묘지에 묻혀 있었다. 세인트 프란시스에 있는 성 가롤로 성당은 여기서 길을 따라 십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묘지에 가 본 지가 몇 해가 되었다. 그래서 살아생전에 다시 묘지에 가서 만나 볼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그들이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적어 주면 내가 묘지를 걸어 다니면서(나는 아직 그곳에 가 본 적은 없었다.) 그들을 대신해 묘 앞에서 기도해 주겠다는 거였다. 내 생각에 그렇게 하면 내가 그들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 주어, 1월에 보호 구역에 온 후로 생긴 유대감이 더 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묘지에 이르러서 보니, 방문자는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다. 원주민 할머니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는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은 욕을 해 대며 예전의 미션 스쿨이나, 성추문, 오늘날의 교회에 대해서 비난을 퍼부었다. 묘지에서 나가 버리려다가 문득 나는 방향을 돌려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일로 모두 묘지에 온 거예요?”

“죽은 자식 보러 온 거야.” 한 여인이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저도 함께해도 될까요?”

그렇게 해서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보낸 시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오후의 일이 시작되었다. 하층민 출신의 애도자들은 천천히 묘비 사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우리가 아는 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자리에서는 기도하기 위해 멈추었다. 나는 그들의 자식, 할머니할아버지, 부모, 형제자매, 사촌, 삼촌, 이모, 그리고 친구들의 묘 앞에서 멈추었다. 그들도 내가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묘 앞에서 나와 함께 기도했다. 슬픔과 기쁨이, 평화와 화해가, 그리고 실제가 어우러진 오후였다.

나는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오기로 식별한 일을 되돌아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식별한 데는 대단한 어려움을 맞부딪히게 되리란 생각도 일부 있었다. 보호구역에서 사는 생활 때문에 원주민들이 부서진 집, 중독자, 죽음, 가난, 희망의 부족 등을 겪는 고통을 마주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회원이 되고 싶은 갈망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의 성소는 ‘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에서, 다시 말해 이런저런 수련기의 시험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소는 ‘그런 것 모두 때문에because of all’ 강해진다. 나의 서약을 되돌아볼 때 내가 확신을 가지고 계속 해 나가고 싶었던 순간, 장소, 얼굴, 말을 수천 번을 떠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