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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네가 돌아오길 바라 : 용서 청하기

by 봄날들판 2017. 7. 10.

네가 돌아오길 바라 : 용서 청하기

Eric Immel SJ 수사님 글
Jesuit Post 출처
번역은 나


네가 돌아오길 바라. ‘용서’를 청하는 것에 관하여

SPOTIFY(웹스트리밍 뮤직 사이트)에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이름의 재생 목록이 있다. ‘기괴한 음악’ ‘공포 영화 삽입곡’ ‘안락한 분위기’ 등의 다른 재생 목록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음악이 별로 당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무실에 출근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목록을 틀어놓고 스티브, 마빈, 홀과 오츠 등의 음악을 듣노라면 오늘 하루가 기분 좋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https://youtu.be/s3Q80mk7bxE
이 재생 목록을 듣다 보면 초반부에 몇 곡 지나지 않아 꼭 나오는 곡이 있다. 잭슨 파이브의 ‘I want you back(네가 돌아오길 바라)’이다. 밝은 할로우 바디 기타와 클래식 모타운 베이스 라인에 어린 마이클 잭슨의 인상 깊은 목소리가 어우러지면 내 안에서 금세 기쁨이 샘솟는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도저히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아침이 있었다. 스포티파이의 그 재생 목록조차도 깊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낫게 해 주지 못했다. 나는 ‘네가 돌아오길 바라’라는 곡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내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 곡의 가사가 새삼 귀에 들어왔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줄게.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노래에서 어린 마이클은 용서를 청하고 있다. 그날 나 역시 다른 이에게 용서를 청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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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이런 식의 울타리에 갇히고 만다.
몇 달 전에 한 친구가 이메일을 보냈다. 독립 기념일인 7월 4일에 내가 지금 있는 곳인 시카고에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나로서는 여간해서는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날이 가까워지자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에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 주에 부모님 댁에 갈 계획이었는데, 그렇지만 그에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상할 일이 아니라 당연하게도 그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라는 단 한 줄이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하나도 답을 하지 않았다.
그가 세 번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세 번 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다만 친구와 저녁을 먹고 싶은 것뿐이었다. 단념하지 않고 나한테 답장을 받으려 할 만큼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결국 이런 것들은 관계 다루기라는 단순한 행동에서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카테고리인 ‘끝마치지 못한 일’로 넘어갔다. 
이 ‘끝마치지 못한 일’이라는 카테고리는 계속 이어지고 내 마음에 남아 있다. 그것은 부족함이라는 잠깐의 감정에서 시작되어 해야 할 일이 이어지는 긴 목록을 확인하는 또 다른 상자로 커진다. 화요일 수업 준비, 확인. 학자금 융자 관련 질문에 대해 동료들에게 내용을 확인하기, 확인. 수퍼비전을 위한 계획 세우기. 확인. 
그렇다면 친구에게 이메일이나 문자로 답장하는 일은? 그것은 점검을 하지 않고 응답이 없이 그러나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채 목록에서 목록으로 옮겨진다. 마치 물웅덩이처럼, 사라질 듯 사라질 듯 하면서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비가 다시 오면 물웅덩이에는 물이 찬다. 
마침내 토요일 아침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시카고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나는 시카고에 있지도 않았다. 시카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부모님 집 뒷마당에서 맨발 아래로 잔디를 느끼고 있 곳에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우거진 숲이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쳐 있었다. 나는 사과를 했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그렇듯이 그는 왜 처음에 일이 그 모양이 되었는지 알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저 내게 순수하고 분에 넘치는 선물인, 용서를 베풀어 주었다.  

***

지금 내가 반복해서 듣는 곡은 우연하게도 역시 제목이 ‘want you back(내게 돌아와)’이다. 그 노래에서 리드 싱어는 깊고도 고통스러운 진실을 이야기한다. ‘나는 용서가 두려워.’
나는 용서하는 게 두렵지 않다. 매일 용서는 연습을 하며 사니까. 용서받는 것 역시도 두렵지 않다. 친구와 마침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내가 작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서로에 대한 우정으로 그것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확신감과 함께 마음 깊이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갈망하는 것과 그런 갈망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 사이는 서로 이어질 수 없는 듯이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의 우정은 십 초면 쓰는 이메일이나 문자 답장도 하지 못한 나의 비이성적인 능력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용서를 청하려면 내가 핑계도 댈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한테 용서를 청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내가 용서를 청하는 편지에 같이 보낼 팝송을 한 곡 같이 첨부한다면 그 편이 더 쉬울 것이다.

***

나한테는 이 년 넘게 보관하고 있는 이메일이 한 통 있다. 한때 아주 친했던 사람이 보낸 이메일이다. 그 편지에서 그들은 그들이 최근에(이제는 최근이라고 하기 힘든) 겪은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런 편지에는 응당 답장을 하는 게 맞다. 그 사람이 내가 그를 위해 실제로 얼마나 기도했는지, 내가 그들이 보낸 이메일을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 답장을 하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안다면, 그들은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게 이메일을 보냈던 이는 그 이야기에서 나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지금으로서 나한테 남은 일은 간단하게 몇 마디를 적어 답장을 보내는 것이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은 좋은 하루를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그 신비에 다 같이 참여하는 날, 그것이 용서하는 것이다. 그 용서가 적절하다는 느낌, 가치가 있고, 사랑받는 느낌을 내게 남기는 날이 돌아올 것이다. 우리 사이에 모든 게 다 좋았던 날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마음에 드시면 공감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