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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순 묵상] 수난 21_본시오 빌라도의 일기 : 마지막 일기

by 봄날들판 2018. 4. 23.

수난 21_본시오 빌라도의 일기 : 마지막 일기

 

끝마침을 하려고 피고인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만났다. 만난 시간이 아주 짧았다. 밖에 있는 그 사람들이 예수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고 소리칠 때 나는 돌아와서 그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다시 말해 그의 기원을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일깨워 주었는데도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그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유죄 내린 사람과 같은 편으로 여긴다는 것 말고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개념들을 연달아 말했다.

이 일련의 사건에서 내가 한 일에 어떠한 책임이나 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공동 책임이 없음을 영원히 확고히 하려고 군중들에게 나아가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그런 뒤 물 한 대야를 가져오게 명하여 그들이 보는 앞에서 거기에 손을 담갔다. 내가 어떠한 책임에서도 나를 씻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그들에게보여 주려고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 이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당신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당신들 앞에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 손을 씻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그 미친 군중한테서 유일하게 얻은 대답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였다.

 

그래서 지금,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된다.What will be will be.’ 내가 개인적인 메모를 적도록 허락해 주시라. 그것이 당신한테 하등 중요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아내 말이 옳은 것도 같다. 그녀는 선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마법사라는 생각도 든다. 아내에 대한 감정은 헌신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되살아났다는 소식을 내게 가져왔을 때 내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하는 미신을 느끼고 혼자 되뇌었다. ‘어쩌면 저 휘장이 아직 이 드라마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인지 몰라.’ 실은 그때 이후 내 삶은 두 명의 빌라도로 나누어졌다. 한 빌라도는 점점 더 회의적인 경향이 커져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사이에 있는 서재에서 나이 들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다른 빌라도는 자신 안에 그의 아내가 꿈꾼 내용이 진실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거기에 연루되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 그러고는 자살이라는 아찔한 나락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용기가 없다. 죽음도, 무조차도 믿지 않는 사람이 나니까.

어떤 사람이(실은 클라우디아가) 그런 말을 했다. 세 번째 길이 있다고, 나 자신을 그의 가르침에(그것이 가르침이라면) 맡기라고, 다시 말해 그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하고 스스로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하라고 말이다. …… 그 길이 적어도 지금 상태보다는 나한테 더 어울릴 성싶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50대다. 이 나이에 마음의 회개가 일어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로마에서 나를 은퇴자 명단에 넣을 것이라는 기별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것 말고는 더는 기쁜 소식을 기대할 만한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