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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모든 것을 태워 버린 불꽃 : 감옥에서 마주한 주님 공현

by 봄날들판 2015. 4. 15.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와 통하는 사람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기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하지요!

때로는 의외의 장소에서 그런 사람을 찾을 때도 있습니다. 요즘 읽는 글은 어느 미국 예수회원의 글인데, 지금 느낌으로는 오랜만에 정말 좋은 작가를 찾은 것 같습니다. 문장도 좋고, 성경과 삶을 연결하는 통찰이 마음에 드네요. 예전에 이냐시오식 관상 기도 관련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이런 나눔을 좋아합니다.

 

The Spark That Burned Everything: A Prison Epiphany

모든 것을 태워 버린 불꽃 : 감옥에서 마주한 주님 공현

 

에릭 임멜 SJ

 

그리고 그들은 큰 빛을 보았다.”

 

그가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 세월 제 안에는 분노가 꿈틀꿈틀했어요. 그러나 그러고 나서, 꿈을 하나 꾸었지요.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 꿈을요.”

 

나는 미네소타 주의 어느 감옥에서 한 재소자와 함께 앉아 있었다. 레이는 자신의 인생사를 털어놓았다. 그는 성인기 동안 대부분 감옥을 들락날락하며 보냈다. 처음에 어떤 일로 법을 어겼을까. 그는 한 남자를 죽기 직전까지 패 버렸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좋은 남자였으며, 친절한 아들이자 형제였다. 예의 바른 사람으로서 열심히 일하며 대학 입학 자격 검정 시험에 합격하려고 돈을 모았다. 그러고 나서 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강간 후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떠도는 소문으로 그의 어릴 적 친구가 그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우정은 금세 끝장이 났다. 레이가 분노에 휩싸여 앙갚음했던 것이다.

그치도 뭔가 깨달은 게 있었겠죠. 그치가 지금 어느 구석에 사는지는 이젠 알지도 못해요. 그당시에 제가 그치를 흠씬 패서 죽사발을 만들었지요. 저는 그 일을 사람들이 누구나 다 손뼉치며 좋아해 줄 줄 알았어요. 하지만요, 그 일을 속시원하게 느낀 적은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어요. 다른 사람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그 일은 제게 불꽃이었어요. 인생을 온통 아작내 버린 불꽃이요.”

그 이후 레이는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셔 대고 물건을 훔치며 윤간을 하고, 남을 때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해를 가한 그 남자를 향한 분노의 마음은 가실 줄을 몰랐다. 그 분노는 폭력을 쓰게 하는 촉매제, 그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그의 행동을 이끄는 촉매제였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었다. 감옥에 몇 번 들락날락하고 나서 그는 결국 이곳 미네소타 주 교도소로 들어왔다.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한은,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분노가 언젠가 그를 죽이고 말리라고. 그래서 그는 성경 공부 모임에 들어갔다.

어느 날 성서 모임에서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는 세 동방 박사 이야기를 읽었다. 이 이야기를 주님 공현이라고 부르는데, 중요한 계시가 담긴 구절이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그는 자신의 피붙이 자녀들을 떠올렸고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지금을 떠올렸다. 또 그는 피드 더 칠드런’(Feed the Children)이라는 자선 단체의 광고에서 본 아이들을 떠올렸다. 뼈와 살거죽만 앙상하게 남은 채 배만 뽈록하게 올챙이처럼 튀어나오고 입가에 허옇게 침과 거품 딱지가 말라붙은 아이들 모습을.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지켜 주고 싶었던 그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레이가 그 일을 그냥 내버려두었더라면, 그저 남의 일에는 관심을 껐더라면, 여전히 친절하고 예의 바른 청년으로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분노와 앙갚음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자아이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가 휘두른 폭력이 아니라면 그는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 모든 게 다 혼란스럽기만 했다. 어쨌든 그는 어떤 아이도 그런 문제를 일으킬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다 그 여자아이 때문이다. 어떤 아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 그날 밤 수감실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며, 그리고 세상에서 너무나 외로웠다.

 

그러고 나서 그는 꿈을 꾸었다. 그 모든 생각을 뒤바꾼 꿈을.

 

***

꿈속에서 그는 부서진 채광창 사이로 하늘 높이 뜬 별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갔다. 코에서는 뜨거운 숨이 천천히 새어 나오는 채 그는 추운 밤공기 속으로 걸어갔다. 길은 멀었다. 이웃집의 사람 하나 없는 거리를 지나고 예전에 살던 집을 지나고 그가 밤에 서 있곤 하던 골목어귀를 지나고 그가 밑에 머물곤 하던 가로등도 지나고 40달러를 훔치곤 하던 가게도 지났다. 그가 머물렀던 삶의 자리는 모두가 텅 빈 채 캄캄했다. 그렇지만 밝은 빛이 하늘 위 저 너머에 떠 있었다.

길을 나선 지 몇 시간이나 지난 듯했다. 마침내 그는 별빛 아래에 이르렀다. 그의 앞에는 거의 허물어진 창고가 하나 있었다. 그곳은 바로 그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버린 사건이 일어난 주먹질이 있었던 곳이다. 그의 가슴이 벌렁벌렁 뛰어올랐다. 그는 창고 안에 그 남자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주먹을 꽉 쥐고서 그는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철문을 살짝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그녀밖에 없었다. 혼자서 아이는 부서진 지붕 너머로 쏟아지는 별빛에 싸여 있었다. 그런 곳은 여자아이 혼자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처음의 그 귀여운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는 꽃분홍색 방한모 밑으로 곱슬머리가 삐져 나와 있었다. 신문에 난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가 손을 뻗자 그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 올렸다. 세 살배기 아이의 가녀린 몸을 안아 올릴 때 그는 따스함을 느꼈다. 아이의 생명력이 그에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고, 그녀가 자기를 죽인 남자를 용서한 것이 느껴졌으며, 레이 역시 그 남자를 용서하기를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Nativity Sadoa Watanabe 1965 Japan

***

우리가 지닌 가장 뛰어난 기술의 하나는 모르는 체하는 능력이 아닐까. 타인을 모르는 체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는 체 하는 능력 말이다. 낯선 사람이 주는 사탕에는 독이 들어 있다. 걸인들은 돈이 생겨도 술을 살 뿐이다. 거기에 벽을 세워 두어라. 그들의 모습을 보아야 머리가 아플 뿐이다. 그들의 관계는 무질서하고 비정상적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등 신경 쓰지 않고 살 것이다. 그는 세상에 잘못을 저질렀고, 그러니 우리는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은 길이 있다.

주님 공현은 빛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빛의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우리는 단순한 통찰을 지녔던 동방 박사들을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무언가 밝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겨울밤의 어둠 속에서 새롭고 분명하며 밝게 빛나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빛을 향해 떠났다. 나중에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어둠을 버리고 사랑 속에 살기로 선택했다.

레이도 그런 통찰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변화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 꿈이 무슨 뜻인지 알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녀는 괜찮았다. 그녀는 살아 계신 하느님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사랑받으며 살고 있었으며 그에게서 분노가 가시게 했다. 오래전에 있었던 그 고통스런 시간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린 불꽃이었다. 그리고 그래도 그는 그 일에서 화해를 발견한다. 그 먹먹한 어두운 창고에서 그녀는 희망을 간직한 불꽃이었다. 그에게는 그 작은 여자아이가 공현(epiphany)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