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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8

역사로서의 언어 : 신성(神聖)과 세속 - 언어학자 월터 옹 역사로서의 언어 : 신성(神聖)과 세속 (The Presence of the Word, 월터 옹 지음, 탐구당, 1991) 중에서 언어와 역사의 내면화 구어(口語)의 변용과 변용의 일부 결과들을 간략히 개관하였다. 이것은 원래 구어였던 것의 역사가 단지 시간의 중립(中立) 분야에 펼쳐진 사건의 연쇄, 일련의 현상으로 간주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정신의 어렵고 흔히 외상적(外傷的)인 재정위(再定位)의 연속으로 보아야 함을 분명하게 만든다. 언어가 음향에서 공간으로 이행하고―음향에서 완전히 떠나지는 않지만―다시 새로운 방법인 전파(電波)에 의해 음향으로 재구성됨에 따라 감각체계는 재조직되고 주위의 물질계와 동료인간과 자신의 사고(思考)와 자신에 대한 인간의 연관성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다. 언어의 변용은 세계.. 2018. 5. 25.
가톨릭 영화를 유튜브 등에서 보는 방법 가톨릭 영화를 유튜브 등에서 보는 방법 2016년에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를 다룬 영화 가 제작되었다. 필리핀 예수회 신부님이 감독을 했는데, 고증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고 바티칸에서도 상영되었다.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나라에 개봉하리라 기대는 안 해도 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유튜브를 뒤지다가 의외로 가톨릭의 성인 영화가 꽤 제작되어서 전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일단 몇 작품만 소개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을 많이 모으고 싶다. 물론 영화를 보는 맛은 스크린과 음향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1972)를 전에 노트북으로 본 적이 있는데, 실은 그냥 그랬다. 그러다가 가톨릭 영화제에서 상영하기에 다시 한 번 보았는데, 영화관도 .. 2018. 5. 25.
영어 성가 추천 영어 성가 추천 종종 영어 미사를 가고 있다. 처음에는 강론을 영어로 들으면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겸사겸사 다녔다. 지금은 성가가 좋아서, 공동체 분위기가 좋아서 다닌다. 영어 성가가 의외로 좋은 곡이 많다. 나는 우리나라 노래는 장르를 불문하고 가사가 있으면 정신이 흐트러져서 다른 일을 하면서 배경으로 잘 듣지 않는 편인데 - 이럴 때는 그래서 연주곡이 낫다. 영어 성가는 분위기가 잔잔하고 감정적이면서도 가사를 들려도 나의 집중력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종종 듣곤 한다. 다음에 나오는 곡이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곡인데 시작 성가냐 파견 성가냐, 어느 성가냐에 따라 (물론) 노래 분위기가 약간씩 다르다. 흠, 성체 성가에 해당하는 곡들이 가장 마음에 든다. 시작 성가 # Take My..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34_그림자와 향기(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묻다)   수난 34_그림자와 향기(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묻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요한 19,34) 이제 살아 있는 이들이 유령이 될 차례였습니다. 그분이 다시 되살아나실 때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십자가 주위에서,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경계에서 그들이 취한 행동은 유령의 행동이었습니다. 라임색 벽에 비춘 소리 없고 몸이 없는 환영이었습니다. 마지막 빛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질 것들이었지요. 진짜 몸과 현실은 그 하얀 시체였습니다. 세상의 진짜 지배자는 피가 하나도 없는 저분이었습니다. 저녁에 나타난 첫 별의 숨결에 얼어붙고 밤의 이슬에 가려진, 움직임 없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분의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마지막으로 흐르게 한 병사는 유령이었습니다. 그의 창도 유..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33_기쁜 죽음 수난 33_기쁜 죽음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 한 줄 평 : 무슨 말인지 공감 안 가는 내용이 좀 있음. 우리는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지는 것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진과 갈라지는 바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붕괴하는 문제라는 이 사건에서, 우리 사람에게 남아 있는 역겨움이 있는 어두운 공기와 빛이라는 이 사건에서, 이 오후 세 시에, 어떤 사람들이 행복해했는데, 이들은 죽은 이들이었습니다. 묘지 아래 누워 있던 유령들이 구멍 나 있는 참호에서 뛰쳐나가려는 젊은 보병처럼 모두 설레였습니다. 그들의 잠은 조용하지 않은 잠이었습니다..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32_손 수난 32_손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그래서 성부께서는 그분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가실 수밖에 없으셨을 때에, 성부는 가 버리셨고, 그분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캄캄한 고통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전처럼 소리 없이 성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얼굴을 숨기신 채요. 그리고 어쩌면 그 신비의 너머에서 그분은 놀라움도 안도감도 표현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손을 내밀어 조개의 모양으로 손을 모으셨습니다. 오로지 성부만이 우리가 붙잡힐 수 있도록 이러한 손을 우리에게 내미실 수 있습니다. 성자 그리스도는 우리가 저지른 절망이라는 죄를, “라마 사박타니”라는 그 거친 외침을 용서하실 만했습니다.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숨으로 반항이 미약해지리라고 믿으..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31_네가 주는 물 한 잔 수난 31_네가 주는 물 한 잔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요한 19,29) 결국에는 갈증이 났습니다. 그분은 뱀처럼 마른 채 언덕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몸에서 계속 피가 흘러 나가자 갈증이 치솟아 그분을 사로잡았습니다. 갈증이 그분을 둥글게 감싸기도 하고 위아래로도 흔들었지만, 그분은 바싹 마른 입술로 숨을 삼키실 뿐이었습니다. 사막에는 노리끼리하고 먼지 낀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끼 위에 하얀 뼈를 흩어지게 하는 사람과 가축 떼의 오랜 갈증이 있었습니다. 체액이 있는 한 그 사람은 여전히 사람입니다. 상처와 못은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30_어둠에 싸인 세 시간 수난 30_어둠에 싸인 세 시간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마르 15,33) 이 시간에 어둠이 덮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장면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누구도 새로이 고문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여전히 그분의 옷을 가지려고 주사위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수난은 슬픈 예상 속에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죽음 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오후 세 시까지 그 세 시간 동안 그분은 더 나쁜 고문자와 씨름하고 계셨습니다. 더 소름끼치는 소멸을 거치고 계셨습니다. 정원에서처럼 다시 이 무서운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수천 배는 더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그분의 선함과 사람의 악의가, 잘 자란 옥수수밭 그..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9_또 다른 천국 수난 29_또 다른 천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 보시고”(요한 19,26) 그분은 자신이 지은 범죄로 내리눌려 죽어 가는 남자에게 낙원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끝나 버렸을 때는, 심장이 멈추고 있는 이에게, 두 눈이 감기고 있는 이에게 낙원을 주는 것은 쉽기만 합니다. 세상이 스스로를 지워 내고 그것의 발톱을 우리로부터 치울 때, 그 꿈으로 자유로이 돌아간 영혼은 이미 낙원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낙원이라는 그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이곳 아래서 찾고자 애썼습니다. 우리의 낙원은 얼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와 시간이라는 사막 사이의 얼굴로, 누구네 집의 불가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다른 사람의 몸이.. 2018.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