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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26일 : 세 가지 겸손

by 봄날들판 2021. 2. 24.

제26일 : 세 가지 겸손
Three Kinds of Humility
By Tim Muldoon

이냐시오 성인은 오랫동안 많은 영적 스승들이 말해 온 것과 마찬가지로 겸손이 영성생활의 전제 조건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신수련에서 그는 겸손 세 가지를 이야기하지요.

하느님께 완전히 순명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
하느님을 위해 명예나 불명예, 가난이나 부 또는 무엇이든 준비되어 있는 것.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기에 하느님을 위해 가난과 불명예를 원하고 심지어는 바보가 되는 것.
이냐시오 성인은 셋 가운데 마지막 겸손함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가장 완전하다고 말하였습니.

이처럼 철저한 겸손을 권고하는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스럽고 더 나아가 위험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부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겸손함이라는 이름 아래 불의에 안주해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고대의 사상가와 현대의 사상가 모두 그와 정반대의 의미임을 시사합니다. 훌륭한 삶이란 겸손함을 거부하고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덕을 받아들임을 특징으로 가진다고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큰 영혼을 소유함’(great-souled-ness) 또는 오늘날의 말로 ‘만족하면서 살기’(living large)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겸손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1640년에 플랑드르 예수회는 예수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는 작자 미상의 글이 하나 실려 있는데, 그 글에서 이냐시오 성인이 예수회원들에게 겸손을 권하면서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알려 주는 작은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Not to be constrained by the greatest thing, but to be contained in the smallest thing, is divine.”

가장 큰 것에 얽매이지 말고 가장 작은 것에 속하십시오. 그것이 거룩함입니다.

 

예수회 신학자 브라이언 데일리는 이 글이 이냐시오적인 겸손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따르는 이는 관대함(magnanimity, 큰 영혼을 소유하는 것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의 말씀에 겸손되이 복종하는 것 사이에서 일종의 긴장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냐시오 성인이 자주 하신 말씀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추구합니다. 이는 세상의 인기와 명예라는 일반적인 척도가 아니라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의 사랑으로 잴 수 있습니다. 겸손의 세 번째 단계는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소외된 지역에 살면서 그곳에서 위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유분방하게 사랑하는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행복 선언’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이미 앞서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잘못된 갈망을 버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서 사랑을 드러내기만 하면 됩니다.



카르도네르 강가의 이냐시오 성인 St Ignatius the River Cardoner 출처 Meg Roxas

 

* 지금까지 본 이냐시오 성인의 그림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