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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5

성체성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만남의 장은 우선 공동체적 만남의 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체의 뜻입니다. 성체성사는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체가 같이 주님을 만나는 만남의 장이며, 거기서 주님은 부활하신 후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만지지 마라. 너는 나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파악하고 붙잡으려면 보편성을 통해서, 교회의 신비를 통해서, 공동체적 현존을 통해서 해야 한다. 왜냐하면 네가 손으로 나를 붙잡으려고 하면 너는 나를 너 자신의 크기로 축소해 버릴 것이며, 나를 가지고 우상을 만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정말 포옹하고 싶으면 전 인류에게 열려진 내 마음 안에서 나를 포옹해야 한다. 너의 마음이 열리고 넓어져 나의 마음의 크기가 될 때, 그때 너는.. 2021. 1. 3.
성체성사를 주제로 한 강의 추천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도봉산 성당 주임)이 9월 10일(목)부터 10주간 가톨릭평화방송cpbc에서 ‘아레오파고스 - 시대의 징표와 신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성체성사’를 주제로 강의를 합니다. 시청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1) 텔레비전 방송 시간 : cpbc 목 07시, 일 19시, 화 01시, 20시, 목 01시 2)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으로 첫 강의가 이미 홈피에 올라왔는데요, 방송일인 목요일 오후에 업로드됩니다. - www.cpbc.co.kr 으로 갑니다. - 상단 메뉴 중 로그인을 눌러 로그인합니다. (회원 가입 또는 페북, 네이버, 카톡 계정으로 인증 후 간편 로그인 가능) (주의 : 로그인을 안 하면 3분 맛보기만 시청 가능) - 프로그램 다시 보기 (단축 주소)로 이동합니다. https:/.. 2020. 9. 11.
제24일 : 맛보고 보아라 : 미각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기 제24일 : 맛보고 보아라 : 미각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기 Taste and See: Experiencing God with Our Sense of Taste ‘맛보고 보아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피정에서는 그동안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으로서 감각을 하나씩 탐구했습니다. 오늘은 미각을 마지막으로 살펴보고 끝맺겠습니다. --------------------------------- 사람은 먹어야 산다. 당연하다. 그렇지만 먹어야 산다는 사실 하나를 제외하면 무엇을 먹고 또 어떻게 먹는가는 사람마다 무척 다르다. 세상에는 갖가지 맛과 향이 있어서, 식성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사실 우리의 라이프 스토리는 자신이 먹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음식에서 우리의 과거, 전통, 배경, 그리고 신.. 2020. 3. 12.
사순 묵상] 수난 04_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1) 사순 묵상] 수난 04_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1) “그 사람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마태 26,24) 예수님이 발을 씻어 주시기 전, 이별에 관한 우울한 말씀 속에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잔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르셨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루카 18,22) 그렇지만 우리가 최후의 만찬이 시작되는 부분의 구절을 읽을 때면 열두 제자들의 머리에, 다가오는 비극의 정점이 시작될 힘이 어떤 식으로든 모여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는 인상을 받지 않습니다. 우선, 어리석고도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그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누가 가장 중요하며 스승님에.. 2018. 3. 27.
사순 묵상] 수난 03_숨는 곳 수난 03_숨는 곳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 ”(마태 26,26) 글을 쓴 작가가 이냐시오 관상 기도를 하면서 느낀 묵상을 중심으로 적은 것이라서 내용이 독특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시판의 글은 블로그에서 무단 복사하지 말아 주세요. 모든 것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 기록에 쓰인 것이었습니다. 성변화(consecration)도 거기에 들어가지요. 그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신 그리스도께는 그분조차도 놀라워할 만큼 예상을 벗어나고, 진심 어린 심리 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는 즉흥적인 자유로움 속에서 성부의 영원하신 뜻에 신비한 방법으로 일치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 복음 구절에서 나는 그분 눈길이 식탁보 위, 빵의 남은 조각 주위에서 맴도는 모습을 바라봅.. 2018.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