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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모아 보자

침묵 피정과 헬스장

by 봄날들판 2024. 8. 26.

몇 달 전 이사를 왔습니다. 

새로운 동네는 전에 살던 곳과 멀다고 해야 하나, 가깝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심리적 거리는 그다지 먼 편이 아닙니다. 

친구들이 퇴근하다가 너네 동네 지나간다고 얼굴이나 보자고 하고 

전에 다니던 성당으로 전철 타고 가서 미사도 가니까요. 

 

그럭저럭 새로운 동네에서 걷기 좋은 길, 슈퍼마켓과 적당한 식당, 카페에 대한 파악을 끝내고 나서

간 곳은 헬스장, 피트니스 센터입니다. 

꽤 여러 곳이 있어서 살피다가 마침 이벤트 하는 곳이 있어서 일단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PT도 받고 있어요. 

PT를 받아 보라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드디어 하게 되네요. 

헬스장이야 많이 다녀 보았지만, 매번 재미없어서 유산소만 하다 재미없어서 곧 그만두었는데 

피티를 하니 운동에 비로소 재미가 붙습니다. 

저처럼 헬린이는 근육도 금방 붙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운동이 이렇게까지 힘든 거였어?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오늘은 그런 어느 하루의 생각들입니다. 

 

하루 운동을 마치고 한껏 지친 채로 물을 마시면서 피트니스 센터를 둘러 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라? 여기는 침묵 피정하는 데하고 비슷한데? 

(여기서 말하는 침묵 피정은 이냐시오식 영신수련 피정을 말합니다.) 

 

일단, 넓지 않은 공간에서 서로 떨어져서 열심히 자기 훈련에 매진합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서로를 별로 의식하지 않은 채 자신이 지금 하는 운동에 집중합니다. 

일단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더라고요. 15 곱하기 5... 이거 채워야 하거든요. 

말 없이 열댓 명이 각자 열심히 근력 운동하는 모습이 뭐랄까...

꽤 멋있었어요. 

침묵 피정에서도 서로 한정된 공간에서 마주치지만 열심히 자기 기도에 몰두합니다. 

침묵 피정 들어가면 그래서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저는 좋더라고요. 

삼가고 서로를 배려하는 그 노력들이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연수나 강의는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하지요. 

 

잘하는 사람을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피정집에서는 경당에서 허리를 세우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럽더니

피티니스 센터에서는 오래 운동해서 자세가 잘 나오는 사람,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들, 

허리가 쏙 들어간 여자들 보면 참 부럽습니다.  

부러운 이유는, 저 역시 해 보니까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뼈에 사무쳐서입니다. 얼마나 근력 운동을 하고 유산소를 뛰어야 하는지 감이 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기도하고 침잠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지 대충 눈치 채서 그렇습니다. 

 

피트니스도 그렇고 피정센터도 그렇고 

가만히 있어 보면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거울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거울도 작은 것밖에 없는데,

피트니스 센터는 아주 전신거울이 곳곳에 있어서 나 자신이 그대로 보입니다. 

뭔가 편하지는 않은 걸음걸이, 거북목, 어깨 말린 거 그런 거가 그냥 투명하게 그대로 보입니다.

이렇게 자세가 안 좋았던가, 하는 마음이 올라와서 마음이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난 뭐 용가리 통뼈인가, 뭐 어쩌겄어 하는 마음으로 일단 뛰고

피티샘이 안내하는 대로 잘 따릅니다. (요즘 팔뚝에 약간 근육 잡힘) 

피정센터에는 전신거울은 없지만 기도할 때 자기 자신을 떡하니 대면하게 됩니다. 

마치 전신거울을 대하는 것처럼 피할 길이 없습니다. 

피정만 들어갔다 하면, 내가 바라는 것과 달리 예전의 상처들, 잘못들, 실수들이 계속 떠올라서

마음을 어지럽히곤 합니다. 피할 수 없이 대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