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듣는 음악이 있습니다.
굴렌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콘체르토 5번 라르고죠.
앞부분에서 피아노의 맑은 터치와 바이올린의 뜯는(?) 소리를 들으면 (첼로였던가?)
발목까지 차는 눈길을 천천히 걸어갈 때의 느낌이 떠오릅니다.
보통 걸음이면 두 박자인데,
눈에 빠진 발을 빼느라고 네 박자로 걷고 있는 느낌 말이지요.
이 곡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
혼자 떠난 피정지에서 밤에 펑펑 눈이 내리고
아침에 눈쌓인 숙소 주변 산책길을 걸어다닐 때의 느낌이랄까요.
음악이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세상의 평화로움을 다 안은 듯합니다.
실제로 이 음악은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도살장을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에
눈길을 걷는 장면에 삽입되었습니다.
굴렌 굴드가 몇 안되는 영화음악을 맡았는데, 그중의 하나죠.
드레스덴으로 기차로 호송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음악도
아주 아름답고요, 굴렌 굴드의 음악 때문이라도 꼭 추천하고픈 영화입니다.
영화의 시작, 주인공 빌리 필그램은 혼자서 오랫동안
프랑스 어느 들판의 눈길을 헤맵니다.
영화는 아주 평화롭게 시작하지만
이 눈길 장면이 끝나고 나서 희극이라고 해야 할지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장면이 시작되지요.
같은 곡의 다른 연주도 들어보았지만-굴렌 굴드의 음악을 포함해서-
이만큼 고요한 눈길을 떠오르게 하는 곡은 없네요.
음악만 올리기 뭣해서 그냥 가지고 있는 그림 몇 개 모으다 보니
관계라는 주제로 성화를 모아보았습니다.
그것도 너와 나, 단 둘의 관계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너와 나가 있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그리고 다양한 관계를
한번 모아 보았습니다.
친구가 이 곡을 무척 좋아했죠. 제가 어렵사리 음반을 구해서 선물로 주자
정말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천상의 음악을 듣고 있을 친구에게
이 곡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