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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글) 나와 예수님의 공통점

by 봄날들판 2016. 5. 11.
어느 수사님의 글) 나와 예수님의 공통점
 
에릭 임멜 Eric Immel SJ 수사님의 글
 
마지스 2016 준비를 위한 글 가운데 하나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세계 청년 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주셨는데 그중 하나는 이것이다. “당신의 삶과 예수님의 삶은 공통점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나는 한 마리 동물처럼 여러 사람과 함께 보안 구역을 지나 드디어 거칠고 회색빛의 감옥에 다다랐다.
***
재소자 명단을 집어 들고 그들에게 나아갔다. 그들은 갇혀 있는 사람들이고 뭔가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날 밤은 여느 날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감옥에서 하느님에 관해 말하는 것이 평범하다면 말이다.) 그때 나와 친해진 교도관 한 명이 부탁을 해 왔다. 함께 1층으로 가자는 것이다. 나는 그전에 1층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보통 교정 사목 사제에게도 제한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정신병과 중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갇힌 곳이다.
 
나는 작은 면담실로 안내를 받아 그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가 교도관 두 명과 함께 들어왔다. 그는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꾹 닫힌 입에서는 끊임없이 불평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케블라 소재의 녹색 전신복을 입고 있었는데 팔은 등 뒤로 묶여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옷을 입지 않은 채였다.
 
교도관은 우리를 두고 나갔고, 케블라 옷을 입은 그 남자는 곧바로 질문을 쏟아 부었다.
 
“자살하려고 하는데 이 전신복 좀 벗게 도와주세요?”
나한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제가 내일 형사 사건 재판이 있는데 변호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나쁜 짓을 좀 했거든요. 뉴스에도 나왔지요.”
“할 수 없어요.” 나는 변호사가 아니다.
“그럼 자판기에서 꿀빵 하나 뽑아서 가져다주실래요?”
“할 수 없어요.” 나는 자판기가 있는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상처를 받아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가 물었다.
“그럼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으신데요?”
“저는 당신과 얼마간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원하시면 함께 기도할 수 있고요.”
***
내가 아는 한 남자는 다리가 무척 큰 감염이 있어서 냄새가 난다. 감염 때문에 그는 피부가 온통 헐어 있다. 그래서 진물이 나서 바지에 들러붙어 바지를 더럽힌다. 이 남자는 시간 대부분을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다리가 마르거나 깨끗해질 틈이 없다. 그래서 4월의 시카고 날씨에 자주 샤워를 해도 축축한 바지에서 며칠이고 냄새가 난다.
한번은 비가 오는 중에 그와 함께 앉아, 비가 그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지만 퍼붓는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내가 아는 한 여자분은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투병생활을 오래 했는데, 치료를 수없이 받고 밤에 잠을 통 이루지 못하고 그녀와 주변의 모든 사람이 크나큰 고통을 겪은 끝에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쯤에 나는 병실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그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그녀를 가족이 있는 집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병이 그녀를 영원한 고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용감하게 미지의 영원함 속으로 떠나갔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자연을 다스리고 병을 낫게 하며 마귀를 쫒아낼 힘이 있으시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
예수님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사람이고 예수님 역시 사람이시다. 나는 올해 33살인데, 예수님 역시 지상에서 대략 그만큼 지내셨다. 예수님은 말씀을 많이 하셨고 사람들을 만지는 것도 많이 하셨다. 나 역시 그렇다. 그분은 친구들과 가족을 사랑하시고 그들과 우셨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분은 빵을 드셨고, 나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분명 예수님은 포도주를 드셨을 것이다. 그것도 똑같군.
 
그렇지만 나는 예수님이 전혀 모르셨던 대륙에서 사는,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 남성 그리스도인이다. 그분은 30살이 되기까지 외진 마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산, 아람어를 구사하는 갈색 피부의 유다인이셨다.
예수님은 또한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나는 전혀 하느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아주 아주 아주 오랫동안 기억되실 테지만, 나는 (죽고 나면) 훨씬 일찍 잊혀질 것이다. 예수님은 폭풍우를 잠재우시고, 마음과 정신을 치유해 주시며 더러운 영을 쫒아내셨다. 하지만 나는 퍼붓는 빗속으로 나갔다가 옷만 흠뻑 젖었다. 나는 몇 가지 도구들을 이용해 자전거 타이어 정도는 고칠 줄 알지만 눈이 먼 것이나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만지는 행동이나 말로 고치는 것은 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과 몇 시간을 함께 앉아서 그들의 가장 깊은 어둠을 들어 줄 수는 있지만, 빛이 나거나 비가 그치게 하는 법은 모른다.
 
사람들은 때로 좀 더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권고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모두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나는 예수님과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그분이 나에게 그분처럼 되라고 요청하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이 나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과 함께 있고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 속에서 우리 모두 안에 계시는 그분께 봉사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는 이 구절과 가장 비슷한 이들, 곧 배고픈 이, 목마른 이,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들 안에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감옥의 재소자와 함께 자리를 하고, 빗속에서 가난한 남자와 함께 기도하며, 죽어가는 여인의 손을 잡아 준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빛과 생명 그리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도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분과 같은 힘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써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