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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순 묵상] 수난_01 버틸 수 있는 한 오랫동안

by 봄날들판 2018. 3. 18.
수난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마르 14,33)

글을 쓴 작가가 이냐시오 관상 기도를 하면서 느낀 묵상을 중심으로 적은 것이라서 내용이 독특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시판의 글은 블로그에서 무단 복사하지 말아 주세요. 

버틸 수 있는 한 오랫동안

“내가 ……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이 세상에서 숨을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라면 인간과 사랑 사이에 높이 솟은 그 철의 장벽, 곧 죄는 마치 어린아이의 입김에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버렸을 테지요. 그날에 세상은, 마치 갑자기 경련이 나타난 간질 환자가, 길을 지나다 그를 보고 도와준 나그네에게 미소 짓는 것처럼 다시 원래의 모습이 되었겠지요.

그저 숨을 쉬는 것, 그것이 그분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당신이 바란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선호하셨습니다. “내가 ……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 그분이 바란 것은 어린 양의 맛좋은 고기도 아니요, 벗들과 느긋하게 즐기는 저녁 모임의 즐거움도 아니었습니다. 아니지요. 그분이 간절히 바란 것은 그분 자신이 먹히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어린 양의 자리에 두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분이 먹히기 위해서는, 먼저 목이 잘리고 피를 전부 빼야 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셨는지 우리가 깨닫고 세상 끝 날까지 그분을 기억하려면 그 방법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는 뜻에 그분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이 구절은 분명 지난 3년의 공생활 동안 그분이 말씀하신 많은 말씀보다도 더욱 그분에게 해당합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이지요.

우리 편에서는 그분의 수난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그분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분께 그걸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스승님이 고문을 받고 죽음에 처해지리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껴 항의하자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게서 물러나라, ……”라고 가장 쓰디쓴 꾸지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슬픔으로 가득 찬 인간 집단 안에 그분은 새로운 슬픔을 가져오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마지막 참회를, 언덕 위에서의 학살을 말입니다.

이런 선택에 우리가 어떻게 그분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이 하실 수 있는 수천 가지 선택 가운데서 가장 비극적인 선택인데요. 중요한 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감사해하기를, 우리가 눈물 흘리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기를 요구하지조차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분명 우리가 직접적인 공동 책임 때문에 양심의 가책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일부 신앙 교사들이 ‘그분이 못 박히신 것은 나의 이기심 때문이고, 그분이 골고타 언덕에서 옷벗김을 당하신 것은 나의 방탕함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요구하지만 말입니다. 2층방에서 잔을 마시실 때,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선택이라는 신비를 마시라고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그저 불가사의하게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져들 때, 그분은 그 금요일의 맥락에서 매일같이 우리를 소진하게 하는 슬픔과 죽음을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수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도 그분은 우리에게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따라오라고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까지 모든 길을 따라간 요한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의 끝부분에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이름 없는 이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마르 14,51-52)

버틸 수 있는 한 오랫동안 그분을 뒤따라가 봅시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고문하는 이의 손에 자신의 옷이 남기고 복음에 나오지 않는 어떤 곳으로 탈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