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 06_침묵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마태 26,37)
* 한 줄 정리 : 그리스도는 사람의 침묵과 아버지의 침묵 사이에서 우셨다.
* 한 줄 감상 : 장르가 묵상에서 소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날 밤 정원에서 그분이 처음으로 뭔가를 부탁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세 제자에게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8) 하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작은 행동으로 충분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사도는 거기 남아서 올리브 나무 밑동 근처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기도하는 동안 그분과 함께 밤의 찬 공기를 조금 참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날이 추웠기에, 기도하지 않더라도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깨어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8)
이러한 부탁에 세 제자가 드린 응답은, 세 친구가 줄 수 있는 전부는, 희미하게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침묵을 방해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을 치워 버렸습니다. 잠이라는 가장 비겁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만약 그 세 사람이 (무서움에 빠져들지 않도록 예수님이 붙잡을 마지막 실을 만들면서) 그분과 함께 깨어 있었더라면, 그분이 수난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을 남겨 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숨 쉬는 소리나, 이따금 헛기침을 하는 소리나, 땅에 신발을 비비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분한테는 충분했을 겁니다. 아니면 어쩌면 그분이 이층방에서처럼 다시 말씀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넘치는 살아 있는 숲이, 마음에 떠오르는 죽음의 이미지를 막아 주는 차폐막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형제들이 머무는 땅과 이어 주던 마지막 실 세 줄을 잠이 잘라 버렸습니다.
그런 뒤 그분이 아버지께 청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세 번을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물론 여전히 “하실 수만 있으시면”라고 하셨습니다. 동화에서 그러하듯이, 창세기에서 아주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하느님 아버지가 소년 이사악을 겨누던 칼을 멈추게 하여 아브라함에게 행복한 결말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30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을 경험으로 알고 나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서로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경험으로 알고 나서 그분이 아버지께 호소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밤에 아버지의 침묵은 마치 세상의 진수처럼 부드럽고도 짙었습니다. 아버지는 라자로의 무덤가에서 그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나흘 전에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침묵이 예수님께조차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하느님께 호소하고 나서 숨을 멈추고 귀 기울이는데 ……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그 마지막 침묵이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맨 아래에 있음을 잘 압니다. 거기에는 당신도 그러하듯이, 자기 자신을 사라지게 하고 싶은 갈망이 뒤따라옵니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 ” 땅은, 우리를 떠받쳐 주는 검은색, 잿빛 땅은 우리가 도와 달라고 아우성치며 두드리는 큰북입니다. 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라는 우리의 기원으로 어서 돌아가기 위해 삼켜지고 싶은 어머니 같은 곳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가 얼굴을 댈 때 그 땅은 모성과의 연관 같은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정원과 진흙과 먼지에 싸인 갈색 고사리와 주위를 날아다니는 야행성 곤충들이 있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집도 나무도 다른 높은 것들도 보이지 않으니 땅이 그분의 마지막 영역frontier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열어 달라고 요구한다 해도 무nothingness가 되어 여전히 닫혀 있을 영역이었습니다. 슬프도다. 아니요, 주님, 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창조하실 수 없었습니다. 저나 당신과 같은 사람만이 (이것처럼 한 시간에) 간절한 상상력으로 무를 갈망하고 또 좋아합니다. 무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천국입니다.
복음사가가 썼듯이 그분의 얼굴이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마침내 두 갈망 사이에서 우셨습니다. 그분 안에 그리고 그분 주위에, 그분이 이어지게 하고 싶었을 생명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그분은 그 즐거움을 맛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생명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리사이들이 가하는 박해조차 달콤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곧 그들이 그분의 몸에서 생명을 빼앗아갈 것이고 흐릿해진 두 눈에 언덕도 구름도 롱기누스가 그분의 심장을 찌르게 될 창도 더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그분의 또다른 갈망, 천국,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지요?
정원의 그림자 속에서 영원히 머문 채, 두 운명적 침묵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렇게 그분의 시간이 계속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침묵과(“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 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조그맣게 흔들리는 고사리 속에만, 풀잎 사이에 보금자리를 튼 날벌레들 속에만 숨어 계시는 아버지의 침묵(“……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사이에서.
* 단어 찾기
vapour 증기
invocation 기도 기원 발동
annihilation 점멸 소멸 섬멸
clamour 아우성 떠들썩함
maternal 어머니의 모계의 어머니다운
complicity 공모 연루 공범
stretch 늘리다 뻗다
fern 고사리류 양치류
nothingness 무 죽음 없음
bark 나무껍질 개 짖는 소리 총성
oracle 신탁 하느님의 말씀 성경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마태 26,37)
* 한 줄 정리 : 그리스도는 사람의 침묵과 아버지의 침묵 사이에서 우셨다.
* 한 줄 감상 : 장르가 묵상에서 소설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그날 밤 정원에서 그분이 처음으로 뭔가를 부탁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세 제자에게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8) 하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작은 행동으로 충분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사도는 거기 남아서 올리브 나무 밑동 근처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기도하는 동안 그분과 함께 밤의 찬 공기를 조금 참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날이 추웠기에, 기도하지 않더라도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 깨어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태 26,38)
이러한 부탁에 세 제자가 드린 응답은, 세 친구가 줄 수 있는 전부는, 희미하게 코 고는 소리를 내며 침묵을 방해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는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신을 치워 버렸습니다. 잠이라는 가장 비겁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만약 그 세 사람이 (무서움에 빠져들지 않도록 예수님이 붙잡을 마지막 실을 만들면서) 그분과 함께 깨어 있었더라면, 그분이 수난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을 남겨 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숨 쉬는 소리나, 이따금 헛기침을 하는 소리나, 땅에 신발을 비비는 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분한테는 충분했을 겁니다. 아니면 어쩌면 그분이 이층방에서처럼 다시 말씀을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넘치는 살아 있는 숲이, 마음에 떠오르는 죽음의 이미지를 막아 주는 차폐막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형제들이 머무는 땅과 이어 주던 마지막 실 세 줄을 잠이 잘라 버렸습니다.
그런 뒤 그분이 아버지께 청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세 번을 이렇게 호소하셨습니다. 물론 여전히 “하실 수만 있으시면”라고 하셨습니다. 동화에서 그러하듯이, 창세기에서 아주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하느님 아버지가 소년 이사악을 겨누던 칼을 멈추게 하여 아브라함에게 행복한 결말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30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을 경험으로 알고 나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서로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경험으로 알고 나서 그분이 아버지께 호소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밤에 아버지의 침묵은 마치 세상의 진수처럼 부드럽고도 짙었습니다. 아버지는 라자로의 무덤가에서 그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어 나흘 전에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침묵이 예수님께조차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하느님께 호소하고 나서 숨을 멈추고 귀 기울이는데 ……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그 마지막 침묵이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맨 아래에 있음을 잘 압니다. 거기에는 당신도 그러하듯이, 자기 자신을 사라지게 하고 싶은 갈망이 뒤따라옵니다.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 ” 땅은, 우리를 떠받쳐 주는 검은색, 잿빛 땅은 우리가 도와 달라고 아우성치며 두드리는 큰북입니다. 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라는 우리의 기원으로 어서 돌아가기 위해 삼켜지고 싶은 어머니 같은 곳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가 얼굴을 댈 때 그 땅은 모성과의 연관 같은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정원과 진흙과 먼지에 싸인 갈색 고사리와 주위를 날아다니는 야행성 곤충들이 있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집도 나무도 다른 높은 것들도 보이지 않으니 땅이 그분의 마지막 영역frontier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이 열어 달라고 요구한다 해도 무nothingness가 되어 여전히 닫혀 있을 영역이었습니다. 슬프도다. 아니요, 주님, 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창조하실 수 없었습니다. 저나 당신과 같은 사람만이 (이것처럼 한 시간에) 간절한 상상력으로 무를 갈망하고 또 좋아합니다. 무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천국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님, 나무 밑동에 얼굴을 댄 채 당신이 우리 모두의 형이상학적인 고통을 겪으실 때, 이것은 당신의 수난이었습니다. 여기에 당신의 영혼이 어느 밤에 믿음을 잃은 우리 모든 형제들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십자가 위에 있었습니다. 가지가 뒤틀려 있던 겟세마니 정원의 올리브나무들은 이상한 괴물이 되었고, 그 모든 것의 상징들은 우리에게 영원히 낯섭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무들은 갑자기 우리의 새로운 죄, 곧 두려움과 지겨움과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낙담하여 받아들이는 죄를 들어 주는 고해 사제confessor가 되었습니다.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는 존재인 나무들은 ‘알았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나무껍질에 하느님의 말씀이 나타나 수수께끼를 푸는 게 가능한가요?
복음사가가 썼듯이 그분의 얼굴이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마침내 두 갈망 사이에서 우셨습니다. 그분 안에 그리고 그분 주위에, 그분이 이어지게 하고 싶었을 생명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서 그분은 그 즐거움을 맛 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생명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리사이들이 가하는 박해조차 달콤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곧 그들이 그분의 몸에서 생명을 빼앗아갈 것이고 흐릿해진 두 눈에 언덕도 구름도 롱기누스가 그분의 심장을 찌르게 될 창도 더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그분의 또다른 갈망, 천국,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지요?
정원의 그림자 속에서 영원히 머문 채, 두 운명적 침묵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렇게 그분의 시간이 계속 지나갔습니다. 사람의 침묵과(“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 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지금은 조그맣게 흔들리는 고사리 속에만, 풀잎 사이에 보금자리를 튼 날벌레들 속에만 숨어 계시는 아버지의 침묵(“……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사이에서.
* 단어 찾기
vapour 증기
invocation 기도 기원 발동
annihilation 점멸 소멸 섬멸
clamour 아우성 떠들썩함
maternal 어머니의 모계의 어머니다운
complicity 공모 연루 공범
stretch 늘리다 뻗다
fern 고사리류 양치류
nothingness 무 죽음 없음
bark 나무껍질 개 짖는 소리 총성
oracle 신탁 하느님의 말씀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