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들은 대개 바쁜 사람이 되는 것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반복적으로 활동을 의식적으로 멈추어, 조용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자신을 보살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그만두지요! 바쁜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활동에 씁니다. 마음은 거의 가만히 두는 법이 없지요. 항상 여러 프로젝트와 계획 세우기를 하니까요.
저는 ‘바쁜busy’이라는 말을 대체로 외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을 설명할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대부분 바쁘다고 여기는 이들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외적으로 그리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움직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더라도, 우리는 기도, 묵상 또는 집중하는 생각 또는 창의적인 작업 같은 내적 작업을 많이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용한’ 사람들도 ‘바쁨’에 대해 자기 나름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조용한 사람을 외적으로 바쁜 사람보다 지적이고 더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냥 인식일 뿐입니다. 조용하고 ‘영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면에서 별다른 것이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적인 활동들이 완전히 자기중심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바쁜 사람을 ‘일을 해내는’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그저 인식일 뿐입니다. 사람이 바쁘기는 한데 전혀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활동이 불안이나 목적의식의 부족 또는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적인 욕구에서 촉발된 것일 때 그러하지요.
우리가 ‘바쁜’ 사람이든 아니든, 매일같이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상관없이요. 움직이고 있는 사람, 즉 우리가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한테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려면 자유와 주의 기울이기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자유로이 지금 하는 일을 멈출 수 있습니까? 자유로이 다른 사람에게 바쁘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까? 자유로이 가던 방향을 바꿀 수 있나요? 일과 활동을 한참 하는 도중에 하느님의 현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열심히 일해서 일을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한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해 쏟고 있을 때 성령께서 당신을 재촉해 주시도록 내어 드리나요?
그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은 사람한테도,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려면 마찬가지로 같은 영적 특성이 필요합니다. 바로 자유와 주의 기울이기입니다. 당신은 내적 삶의 엃힘, 그러니까 계속 반복해서 떠올리는 사건, 계속 반복되는 사건, 끓어오르는 억울함, 소리 높이 외치는 갈망에서 자유롭습니까? 자유로이 가던 방향을 바꿀 수 있나요? 그렇게 되면 자신의 고요함과 고독 가운데 일부를 포기하게 될지라도요? 당신은 내면의 하느님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당신이 지닌 다른 모든 음성보다 더 크게 들리도록 내어 드립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을 통해 또는 활동을 하는 도중에 오는 성령의 소통을 기꺼이 알아들으려고 합니까?
하느님께서는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소외, 다시 말해 우리가 편안함과 친숙함을 얻는 곳 그리고 탐험하도록 초대를 받아 불편함을 느끼는 곳 사이의 자리에도 다가가십니다. 당신이 일을 마치느라 바쁜 사람이든, 주로 내면에서 사는 듯한 조용한 사람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자신의 현 상태를 뒤집도록 초대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흔든다는 것은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환상, 그리고 ‘우리는 괜찮아요.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하는 환상에 도전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을 알아보고 싶다는 의지를 기르면 됩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이 기꺼이 그런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대부분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의 좋지 않은 시력을 따라가느라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