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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순 묵상] 수난 13_두 개의 터반

by 봄날들판 2018. 4. 1.
수난 13_두 개의 터반


“먼저 한나스에게 데려갔다. …… 한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카야파 대사제에게 보냈다.”(요한 18,13.24)


이 무렵 그분의 죽음을 위한 준비가 모두 마쳤습니다. 이에 관해 카야파가 아주 확실하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요한 11,50)

한나스, 카야파……,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어째서 그들은 이 온화한 분이 죽기를 바라단 말입니까? 어째서 그날 밤에 횃불이 오고 가는 가운데 늦도록 저택에서 자지 않고 깨어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는 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모든 죽음 가운데서도 가장 수치스럽고 사악한 일이었고 그들은 가장 무자비할 만큼 끈질겼습니다. 그 두 터반을 쓴 사람 아래(하나는 나이 들고 모든 권력을 지닌 장인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대사제의 지위에 있던 더 젊은 사위의 터반) 예언자를 없애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사람들 사이에서 누리던 위험한 인기를 끌어내리고, 로마 총독이 그 사건에서 손을 씻고 싶어 하겠지만, 그에게 그들의 뜻을 밀고 나갈 계획이었습니다. 터반을 쓴 그 두 사람의 머리에서는 이미 원리만큼이나 아주 완전하고 무자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채찍질을 한 것부터 창으로 찌른 것까지도요. 이 두 사람은 빌라도의 근시안적인 무감각뿐만 아니라 유다의 성급한 감정적 행위와 경박한 무지도 부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며 카야파가 소리쳤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옷을 찢는 극적인 몸짓으로 죄수와의 만남을 끝내 버렸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반대했던 걸까요? 아니면 이 떠돌이에게, 이 거리의 주술사에게 무엇이 그리 무서웠던 걸까요? 그분께는 안타깝게도, 그들은 떠돌이이자 주술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눈먼 이와 다리 저는 이를 고쳐 주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한두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또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도 너무 많이 말씀했습니다. 또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하느님을 경배하는 장소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언덕 위의 무화과나무 아래나 건초다락의 이끼 낀 의자로 바뀔 수 있다면 대사제의 일 가운데 남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도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요? 히브리에서 가장 순수한 계급이 모욕적인 언사로 헐뜯음을 당하게 된다면, 카야파나 한나스 같은 라삐나, 그들의 터반이 어떻게 될까요?

카야파가 잔혹한 앙심을 품고서 분노하여, 허리에 줄을 묶고 그의 앞에 선 남자를 신문했습니다. 그분은 카야파의 강경한 결정으로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절이나 철학적 글로 정리하지 않은 가르침을 반복해서 말하느라고 자신의 삶에서 황혼기의 짧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가르침이 살아 있다면, 지금부터는 그것을 마음에 안고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의 안에, 또한 계속되는 운명에 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을 중상하고 서로 말이 맞지 않는 부패한 증인들의 광란의 소란에, 재판관의 압력에(“당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요?”) 그리고 그날 밤 저택에서 세뇌당한 채 사악하게 빈정대던 모든 이에게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물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죽음이 확실해지게 된 것은 이때의 침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처형의 장소로 보낼 카야파와 다른 회당 원로들이 그들의 찬탈당한 역할에 대해 예수님이 독설을 하셔서 분노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차분하게 입을 여시어 우리 모두가 그분에게 물어보던 불같은 격렬한 질문에 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라고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옷이 찢기는 소리가 나는 중에, 더 강하고 한층 복수심에 가득 찬 수난이 카야파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것을 위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모실 수 있고 그분께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한테는 그분을 만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분이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 우리한테는 그분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카야파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분을 죽이는 것이지요. 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분을 죽이는 것입니다. 흐릿한 우상 뒤에 자신을 숨긴 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채 나타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짓이라고 그분한테 외치면서요.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하느님의 아들을 죽인 것은 바로 위선이었습니다.


* 단어 찾기

fig tree 무화과나무

hayloft 건초 다락

iniquitous  사악한 부정의 매우 부정한

pertinacity 끈질김 끈덕짐 불굴

implacable 무자비한 달래기 어려운 앙심 깊은

overthrow 전복시키다 타도하다 끌어내리다 폐지하다

stark 완전한 아주 완전히 극명한

remorseless 무자비한 냉혹한 뉘우치지 않는

theorem 정리 원리 공리

lash 비난 채찍질 공격하다 휘몰아치다

scourge 재앙 사회악 끔찍한 해악 채찍질하다

thrust 추진하다 내밀다 생겨나다 제쳐놓다 떠넘기다

heedless 부주의한 조심성없는 상관하지 않는

vagabond 방랑자 부랑자

witch-doctor 주술사 기도사 마법사

short sighted 근시안적인 근시안

caste 카스트 계급  

vilify 비방하다 헐뜯다 중상하다

sadistic 잔혹한 사디스트적인

spite 원한 앙심

hysterical  광란의 히스테릭한 분별이 없어진

hiss 비난 야유하는 소리

sinister 사악한 불길한 해로운 무시무시했던 나쁜

thrust 밀어붙이기 힘껏 떠밀기 빈정대기 습격

brainwashing 세뇌하기 당하기 세뇌 설득

invective 독설 욕설 악담

raging 사납게 날뛰는 격렬한 극심한

serenely 평온하게 차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