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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부러졌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by 봄날들판 2016. 10. 27.
<어느 수사님의 묵상> 부러졌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https://thejesuitpost.org/2016/07/broken-but-not-giving-up/

이번에도 Eric Immel 수사님의 글.
 
1991년 7월 16일, 나는 물풍선놀이를 하다가 젖은 잔디에서 미끄러졌다. 그날은 25년 전, 아홉 살 생일 바로 전날이었다.
발이 위로 올라가고 어깨가 아래로 떨어졌다. 왼팔은 등 뒤로 꺾였다. 그러면서 소름돋는 두드득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 앞에서 욕을 했다.
“아이 ××!! 나 팔 부러졌어!”
부모님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혼내는 건 나중에 하기로 생각하고 우선 서둘러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내 요골과 척골은, 그러니까 양 팔뚝은 똑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부분의 아래는 몸에서 마치 만화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팔꿈치가 두 개여서 팔이 Z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웹스터 거리를 미친 듯이 운전해서 흔들릴 때마다 팔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의사가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팔을 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나는 부러진 뼈를 꼭 붙들었다. 누르니까 좀 덜 아팠다. 응급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고통은 참을 만해졌다. 머리가 정신을 좀 차리자,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나머지 여름은 다 망쳐 버렸네. 석고 붕대를 할 텐데, 수영도 못 하고 지역 모임에서 축구도 할 수 없고 그린 아이슬 파크에서 원숭이 담장은 넘을 수도 없을 거야. 자전거는 탈 수 있으려나? 그네타기는? 모래성은 어떻고? 나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팔이 제대로가 아닌데, 어떻게 나일 수 있겠는가?
몇 시간 뒤에 나는 생일의 제일 앞부분인 단잠에서 깨어났다. 병원 침대에서 무사히 있었으며, 팔도 두 개고, 딱딱하고 하얀 석고 붕대가 어깨부터 손목까지 감싸고 있었다.

* * *
몇 년 후에는 다른 뼈가 부러졌다. 라켓볼을 하고 있었는데 코트 앞쪽으로 공을 따라가다가 발뒤꿈치가 미끄러졌다. 곧바로 발이 벽 쪽을 향했다. 그 바람에 마치 바나나 송이에서 바나나처럼 왼쪽 발가락이 위부터 아래까지 깨졌다. 
나는 여덟 주 동안 부츠를 신어야 했는데, 적어도 한 달 동안은 목발을 해야 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일했기에 하루 종일 자갈로 포장할 길을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다. 하이힐을 신은 대학 동료들이 돌로 포장한 곳은 겉보기와 달리 위험한 곳이라고 투덜대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목발을 하고 나니 비로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나는 밖에 다닐 때 다른 이와 함께 다녔다. 오마하의 여름은 덥고 무더운데, 겨드랑이는 계속해서 땀으로 찼다. 석고 붕대를 한 채 부츠를 신어서 승용차의 클러치 공간에는 너무 컸기에 차를 운전할 수도 없었다. 차가 수동식이었기 때문이다. 하프 마라톤에 친구와 같이 나가려고 훈련하던 것도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태어나길 두 발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다리 하나로 뭘 할 수 있겠는가?
* * *
나는 미지의 세계로 여러 번이나 내던져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지 않는 영광스러운 미지였다. 나는 다른 대륙에도 가 보았고 라코타 인디언 보호구역에도 가 보고, 시카고의 길거리와 거기 사는 노숙자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만났다. 이런 장소에서 모두 나는 가장 충만하고 가장 편안한 자아였던 적이 없다. 이런 장소에서는 나의 한계를 가장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한계는 쉽게 이겨 낼 수가 없다. 언어도 부족하고, 육체적 편안함이나 건강도 부족하며, 역사적 트라우마의 집단적 기억에 대한 앎도 떨어지고, 타인을 다른 피부색, 교육, 경제적 상황의 결과로 보는 참된 앎도 부족하다. 나는 이러한 한계에 굴복할 뿐이다. 이런 것은 피할 길이 없다.
그 25년 전 여름은 결국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팔에 가방을 두른 채 샤워를 해야 했지만 석고붕대를 한 9살 소년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체득했다. 뼈가 붙는 나머지 기간 동안 부모님이 나를 특별히 보살피면서 부모님과 더 가까워졌다. 아침에는 누이동생하고 더 오래 어울려 지냈다. 형은 이웃친구들이 너무 세게 장난하면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었다. 나는 살아 있고 자유로웠다. 그래서 석고 붕대를 떼어내자 반친구들에게 할 멋진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발가락 역시 천천히 나아졌다. 사람들은 내 사무실에서 캠퍼스 저 끄트머리에 있는 모임 장소까지 데려다주었다. 내 친구는 여름방학 동안 다른 곳에 있었는데 나에게 자동식 자동차를 빌려 주었다. 나는 친구와 달리기를 하는 대신 근력 운동을 했다. 모든 것이 괜찮았고 나는 외롭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나 그대로였다.
그리고 배운 게 하나 있다. 전체에서 부족함이 있다는 감정을 맞대면했을 때, 한계를 부딪혔을 때 나는 지배를 유지해야겠다는 필요를 내려놓는다. 그 편보다는 나의 밖에 있는 것에서 오는 것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에 나를 맡긴다. 나는 조정하지 않고 나아가는 편을 택한다. 미지의 곳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은 혼자 가는 외로운 모험이 아니며 내가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내가 계속해야 할 사람과 사물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걸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냥 거기서 나를 맡겨 보자. 

Issak Levi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