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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11일 : 활동 중의 관상

by 봄날들판 2017. 12. 19.
제1l일 : 활동 중의 관상
활동 중의 관상
Contemplation in Action

- 번역 후 한 줄 감상 : 지금까지 가운데 이 글이 가장 마음에 듦.

활동 중의 관상이란 존재하는 방법을, 바라보는 방법을,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존재하는 법 배우기
관상이란 우선 존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의 은총에 내어 맡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행동에 나서기 전에 나는 하느님 앞에 있는 나 자신으로서, 다시 말해 은사와 결점을 둘 다 지닌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의심하는 마음이 든다. ‘하느님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를 바라실까? 아니면 저 정도 갈망을 품은 나를 바라실까? 하느님은 나의 아름다움과 엉망진창을 사랑하실까?’ 예수회 사제 발터 부그하르트(Walter Burghardt, SJ)는 관상이란 ‘실재를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향해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오랫동안 바라보기 전에 할 것이 있다. 하느님이 나를 오랫동안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다.

바라보는 방법 배우기
관상은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련이 있고,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은총의 가능성에 귀를 기울이고 참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어제 남편과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그리고 기쁘게도 엄마 토끼와 아기 토끼 두 마리가 이웃집 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해야 할 심부름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그 선물을 놓쳐 버렸을 것이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서,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내어놓기보다, 바라보고 귀담아들어야 한다. 한번은 니카라과의 어느 비영리단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 있는 가난한 공동체에 수십 개의 태양열 밥솥을 기증한 몇몇 사람들의 형편없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행동은 의도는 좋았지만, 태양열 밥솥은 집을 시원하게 하고 콩을 품질을 높이기 위한 연기를 위해 나무 그늘에 의존하는 보통의 집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봉사에서, 봉사를 제공받는 공동체는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안다. 우리는 평등과 연대의 관계를 북돋우면서 바라보고 귀담아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관상은,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타인으로 하여금 시야를 넓혀 주는 비유가 될 수 있고,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신비가 될 수 있게 한다.

사랑하는 방법 배우기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관상은 행동으로 옮겨 간다. 우리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아프며, 감옥에 갇히거나, 외롭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랑하도록 부르심받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은 감정 이상의 것이다. 사랑은 현실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자신이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더욱 자유로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법이다. 바라보고 귀담아듣는 시간을 가질 때 그때 나는 진심으로 응답하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것에 더욱 잘 준비를 갖추게 된다. 활동 중의 관상은 우리의 존재를, 바라봄을, 사랑을 하나로 모으게 한다.(Contemplation in action brings together our being, seeing, and loving) 바로 하느님이 처음에 지어 내시고 바라보시고 사랑하신 사람으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