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순 묵상] 수난 30_어둠에 싸인 세 시간

by 봄날들판 2018. 5. 24.
수난 30_어둠에 싸인 세 시간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마르 15,33)


이 시간에 어둠이 덮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장면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누구도 새로이 고문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여전히 그분의 옷을 가지려고 주사위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수난은 슬픈 예상 속에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죽음 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오후 세 시까지 그 세 시간 동안 그분은 더 나쁜 고문자와 씨름하고 계셨습니다. 더 소름끼치는 소멸을 거치고 계셨습니다. 정원에서처럼 다시 이 무서운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수천 배는 더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그분의 선함과 사람의 악의가, 잘 자란 옥수수밭 그리고 밭을 초토화한 긴털족제비가, 모두가 완전히 그리고 터무니없을 만큼 무의미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낮 열두 시부터 죽어 가던 그리스도는 고아였습니다. 그분에게 더는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성부는 그분의 눈앞에서 죽은 분이었습니다. 어둠이 온 땅에 덮인 그 세 시간은 그분의 머리에서 아버지가 겪으시는 고뇌였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하신 다른 말씀은 쇠락한 몸에서 약한 목소리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을 그분은 “큰 소리로”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가장 절망적이고 멀리 있는 분에게, 신음과 피에도 여전히 꿈쩍하지 않으실 분에게 가 닿아야만 하는 외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사제에게 들은 수난 이야기들을 떠올릴 때 “그렇지만 내 삶은 십자가 위의 그 오후보다 훨씬 더 힘듭니다.”라고 말하는 모든 이에게 가 닿아야 하는 외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겹겹이 쌓인 어둠 속에서, 그분은 그런 백성들의 하느님이었습니다. 죽을 듯한 아픔 때문에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람의 깊숙한 곳에 있는 참혹한 구덩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이곳입니다. 그리스도는 그곳에 빠지셨고 아버지를 잃은 모든 불행한 사람과 똑같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모두와 오후 세 시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태어나서 살아 있는 이들 가운데서 죽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우리 모두를 가장 가까이 함께 모아 주는 외침인, 깊은 절망 속에서 외치는 사람의 울음과 자신을 동일시하심으로써 그분은 자신을 우리의 친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엘로이 레마” 이 아람어 단어는 하느님의 고아들, 우리가 무신론자라고 부르는 이들, 그들이 진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똑같은 외침을 외치는 것에 위대함이 있는 이들 뒤로 닫게 했던 문을 부수어 버립니다.


* 단어 찾기

appall 오싹하게 하다 질리게 하다 놀라게 하다  

stagnate 괴다 정체되어 있다 발달이 멎다

annihilation 점멸 소멸 섬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