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14일 : 인내의 근원이신 하느님

by 봄날들판 2018. 7. 27.

14: 인내의 근원이신 하느님

God at the Root of Patience

 

되도록 많이, 되도록 효율적으로 쟁취하려고 저돌적이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가끔 있다. 나는 활력이 많고 기질적으로 빠른 속도 덕분에 오늘날의 미국 문화에 잘 어울리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효율적인생활방식에는 단점이 하나 있다. 하느님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깨닫기까지 세월이 몇 년이나 걸렸다

인내란 대개 가꿀 필요가 있다. 날 때부터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기의 모습을 한번 잘 보자.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칭얼대며 곧바로 요구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인내에 더불어 오는 평화를 체험하면서 더욱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과 갈망이 더 깊어졌다. 혼자서는 인내라는 덕을 숙달할 수 없음이 분명했기에 인내는 개인적으로 그분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이 적지 않게 필요하다. 나한테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내의 개념을 생각할 때면 천천히’, ‘차분하게그리고 받아들이다라는 단어가 금방 떠오른다. 분명히 거기에는 더 깊은 면이 있기에, 이렇게 금방 떠오르는 단어들이 완전히 놓치고 만 인내의 근본적인 측면이 있기에, 나는 인내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인내의 근원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깊은 측면이 서서히,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계시된 것이 틀림없다. 인내는 하느님을 깊이 신뢰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인내는 단지 의지적이거나 올바른 덕행이라기보다는 더 깊다. 이는 하느님의 타이밍이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확신을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이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느린 일을 신뢰하십시오.”라고 일깨워 주었다. 하느님의 절묘한 타이밍을 믿으면, 일이 지체되거나 느린 속도로 나아가더라도 내면의 평화가 그대로 유지된다. 내가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그분이 하시는 일을 잘 아신다.

마침내 내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하느님의 느린 일이 그분의 최고 걸작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창조에 관해서는 서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으로 장엄하여 분명 모든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당연히 하느님께서 그 복잡함을 서서히 드러내신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인내라는 미덕을 받아들이라고 초대하시며, 인내를 실천하도록 기회를 수없이 많이 주신다. 하느님의 속도에 발맞추어 하느님의 이끄심을 따를 때 거기서 받는 보상은 엄청나다. 즉 하느님이 나와 가까이 계심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