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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19일 : 초연함의 의미

by 봄날들판 2018. 7. 31.

19: 초연함의 의미

The Meaning of Detachment

 

이냐시오 성인은 초연함detachment 또는 불편심indifference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두 단어는 어느 하나도 오늘날 언어나 문화에서 영향력을 가지지 않는다. 둘 다 냉정하고 무신경한 듯이 들리는데, 이는 이냐시오 성인이 그 단어를 사용한 정신과 동떨어져 있다. 이를 더 잘 표현한 단어가 있다면 균형balance’일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원리와 기초에서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도움이 되면 그만큼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버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역자 주-우리나라 번역본과 다르다.)

처음에 이 개념이 나한테는 좀 착취적으로 보였다. 마치 피조물 전체가 존재하는 것은, 그곳에서 오로지 우리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각을 고르게 하려는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이 개념이 내게 크게 다가온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조용하고 햇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벤치에 앉아 맨드라미 덤불을 바라보았다. 8월 하순이라 꿀벌들이 쉴 새 없이 맨드라미를 왔다 갔다 했다. 꿀벌이 꽃에 아주 사뿐히 내려앉았는데, 꽃은 그들을 받아들이려고 활짝 열려 있었다. 꿀벌은 어떤 식으로든 꽃잎이 닫힌 꽃 속으로 들어간다던가, 꽃잎을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꿀벌은 열려 있는 꽃을 발견하면 그 속으로 기어들어가 벌꿀을 모았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이 덤불에서 저 덤불로 꽃가루를 옮겼고 그렇게 해서 결실이 더 많아지게 했다.

이 모습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꿀벌들이 맨드라미 꽃을 선택하고 마당에서 자라는 다른 꽃은 무시하는데도 다른 곤충들은 다른 종류의 꽃에서 양식을 찾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한테 정확히 맞는 것을 선택할 때에, 곤충들은 자신만의 양식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속한 환경에서 결실이 많이 맺히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식물이 아니라 이 식물을 선택할 때에 결코 다른 식물을 거부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이처럼 조화롭고 협력적인 생명의 비밀은 각 피조물이 저마다 그 나름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것에 있다. 저마다 그들에게 적합한 원천으로부터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것을 얻었고 그렇게 하면서도 그 자체나 꽃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실제로, 곤충과 꽃은 서로 만나고 나서 전보다 풍요로워진 상태로 남았다. 곤충은 양식을 공급받았고 꽃은 수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모습이 생명으로 이끄는 것을 사용하고 각 개인에게 그를 생명으로 이끌지 않는 것은 내버리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임을 발견했다. 이는 진정으로 창조적인 초연함이었다. 또한 하느님께서 애착을 놓아 버리라고 요청하실 때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 꿀벌은 꽃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고, 꽃도 마찬가지로 꿀벌을 가두어서 잡아두려 하지 않았다. 이는 꿀벌, 맨드라미, 그리고 그들 주변의 더 넓은 피조물계의 요구를 완벽하게 채워 주는 자유로운 교류였다.

 

Margaret Silf<Inner Compass>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