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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예수님의 기적 04_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 주무시고 계셨다.(풍랑을 가라앉히신 기적)

by 봄날들판 2018. 9. 9.

예수님의 기적 04_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 주무시고 계셨다.(풍랑을 가라앉히신 기적)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마르 4,37-38)

 

호수에서 풍랑을 가라앉히신 일처럼 커다란 기적에 나는 관심이 없습니다. 돌풍으로 여기저기 물이 날리는 중에도 고물에서 주무시는 그분의 얼굴에 관심이 갑니다. 배 밖에서 일어난 일에는 별 관심이 없지요. 흥미 있는 것은 배 안에서 일어난 일, 배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일어난 본능의 충돌입니다.

나는 나와 비슷한 그 사람들한테 관심이 갑니다. 그들 아래에 죽음이 있고,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한테요.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했기에, 예수님과 함께 살고 그분의 비유를 들었고 죽은 이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았지만 부질없다고 느낀 그 제자들한테요.

그리고 나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에 관심이 갑니다. 잠이 드신 분, 그리고 이 말씀 속에 계신 분한테요.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그들 마음속에 풍랑이 일자, 사람의 아들께서 그처럼 끝없는 배려로 지은 믿음이 침몰하여 지금은 파도 속에 잠겼습니다.

아마도 이 기적은 모든 기적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고 용기를 꺾는 기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무시는 그분의 머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무시된 교훈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앙은 기적이 없이 행하는 편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메시지가 그 배의 바닥에서 완전히 그분의 잠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터무니없고, 좀처럼 깨지 않으며, 사내아이 같은 잠 속에요. 그리고 우리의 성인들 몇 분은 폭풍 속에서 다만 잠자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전전긍긍하며 그들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삶과 죽음이 똑같이 아름답다고 가르치지 않았느냐?

아닙니다. 주님, 죽음은 추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친구가 없습니다. 그곳에 혼자서 가고 누구를 아는 일이 결코 없는 것 같아요. 심지어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다른 이를 좋아합니다. 죽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믿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기적이 그들이 원하는 전부였습니다. 호수가 잔잔해지고 죽음이 언덕 꼭대기 너머로 사라져 가는 그런 것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호수는 잔잔해지고 하늘은 밝게 평온하게 빛납니다. 우리가 원하던 그대로요. 그리고 살아 있다는 기쁨, 그분 옆에서 안전하다는 기쁨 때문에, 우리는 믿음이 부족하고 겁을 냈다는 부끄러움에 하나도 짓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그분의 주무시던 그 얼굴을, 그리고 고물에서 그물이 쌓인 위에 계신 그분의 모습이 주는 평화를 압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넉넉하지 않습니다. 주무시는 하느님은 또한 죽은 신과, 존재하지 않는 신과 너무나 비슷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