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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예수님의 기적 07_베드로, 우리와 같은 사람(물 위를 걸으시다)

by 봄날들판 2018. 9. 18.

예수님의 기적 07_베드로, 우리와 같은 사람(물 위를 걸으시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마태 19,27)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요한 13,6)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마태 26,35)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태 26,72)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요한 21,17)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마태 16,17-18) 

 

베드로, 당신은 호숫가에서 일어난 이런 여러 기적에서 중심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사공이자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물에서 비범하다는 점에 도움을 받아 당신의 자화상에 색깔이 입혀졌습니다. 초록색으로 물든 호수를 배경으로 피부가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모습이었습니다. 바다사람의 이런 모험들로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을 그릴 수 있고, 그것은 앞으로 수천 년 동안도 그러할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조명과 음영 속에서 정리되고 정확한 말과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베드로 사도여, 당신의 말과 행동은 당신이 지닌 한계를 뚜렷이 보여 줍니다. 스승님이 풍랑 속에서도 주무실 때 당신은 배에 탄 동료들한테 좋은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배에서 뛰쳐나간 밤에 볼 수 있듯이 헤엄을 잘 치는 사람도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이런 한계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한계들이 우리 역시 지닌 한계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당신의 서투름과 격렬함을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생명과 기적을 향한 열망, 몸짓,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예수님을 배반하고 나서 보인 용기를 바로 우리 역시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또한 우리는 짖지 않는 개와 같은 헌신을, 수탉이 울 때 흘린 꾸밈없는 눈물을, 그분을 처음 보는 사람이 되려고 새벽에 무덤으로 급히 달려갈 만큼 성급한 기질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이야기 전부가 여기에 놓여 있어, 밤에 비추는 등대의 깜빡이는 불빛이 비치는 가운데 믿음과 의심이라는 저 검붉은 색의 광장에서 공연되는 중입니다. 당신을 매일 괴롭혔던 그분의 말씀, “왜 의심하였느냐?”마저도 또한 우리를 매일 두들깁니다.

베드로, 믿음, 베드로, 믿음, …… 두 단어는 끝을 모르는 드라마에서 빙빙 소용돌이칩니다. 베드로여, 당신은 가난한 어부여서 물고기, , 타르 같은 말을 쓰는 것에도, 손을 더럽히는 거친 물건들을 태평하게 다루며 사는 일에도 능숙한 이였지요. 바로 그런 당신 위에 떨어진, 당신의 삶에 암 같은 병폐로, 저녁 무렵에 부는 바람처럼 종잡을 수 없고 방심할 수 없이 들어온 단어는 무엇이었습니까?

호수에서 일어난 그 기적들로 우리는 당신에 관해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의 죄이고(because a man is a single sin), 당신의 죄는 빛이신 분에게 고집스레 저항하여 오래된 어부의 상식을 충실히 따르려 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죄는 사람이라는 당신의 존재 자체에, 위대함과 야비함 둘 다 가질 수 있는, 모순과 두려움에서 태어난 자녀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베드로 사도여, 당신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분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지도자로, 나머지 우리와 같은 가엾은 이로서 주셨습니다.

당신을 지도자라고 부르는 데에는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형에 처해진 일을 떠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날 밤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배를 뛰어나간 일로 충분합니다.

 

# 루이지 산투치의 <예수님을 만나다Meeting Jesus> 번역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