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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예수님의 기적 16_누가 조용히 집에 갈 수 있겠습니까?(에파타)

by 봄날들판 2018. 10. 13.

예수님의 기적 16_누가 조용히 집에 갈 수 있겠습니까?(에파타)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7,33-34)

 

그분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하실 수 있으시다면 그분께서는 그런 방식을 선호하셨습니다.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고 두 사람만이 아는 기적을요.

논쟁거리가 되는 기적이나, 성공 사례로 사기꾼들과 궤변가들의 얼굴에 대고 던져 줄 필요가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분은 중풍 걸린 이를 일어나게 하시어, 모든 사람이 바라보게 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그러한 기적은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게 마련이었고,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신 기적처럼 큰 무리의 군중을 위해 행했습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신 일이나 라자로를 다시 살린 일처럼 의기양양하기도 했고요. 또한 한 목소리로 놀라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그분은 다른 쪽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어떤 불행한 이의 손을 잡아 인기척이 없는 길로 그를 이끄셨지요. 선물이 환호와 낯선 이들의 호기심 때문에 흐릿해지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요.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나무와 구름 사이 소박한 장소, 그분 역시 세상에서 드물게 기쁨을 찾으실 수 있는 곳, 그리고 짧은 환희로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언제나 기적 후에는 (나병 환자와 눈먼 이에게 그랬듯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 말라는 걱정스러워하는 지시가 따랐습니다. 거의 협박조였지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

…… 보입니다.” “…… 말할 수 있습니다.” “…… 걸을 수 있습니다.” “…… 병이 나았습니다.” 주님, 그런 날에 누가 조용히 집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기쁜 소식을 안달하지 않고서 혼자만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리라고 보십니까? 당신께서 그들을 떠나고 나서 그들이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기쁨이 마치 눈사태처럼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십니까? 저기 아래쪽에 있는 마을에 그들의 집이며 부엌과 테라스가, 쓰던 의자가, 그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친구가 있지 않았습니까? 당신 생각에 우리한테는 기쁨보다 더 강한 것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기쁨보다 더 강한 어떤 기쁨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당신과 우리는 항상 갈등을 빚습니다. “에파타, 이제 너는 들을 수 있다. 너는 낙엽 속에서 종다리가 우는 소리를, 우물 속에서 도르래가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나무꾼이 나무의 몸통에 도끼 찍는 소리를,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너의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너에게 묻는 사람 누구의 말도 듣지 마라.” “에파타, 이제 너는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이 역시 당신께서 내린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라고 마르코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그는 당신께서 주신 혀를 곧바로 당신을 배반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이 이미 불성실함으로 더럽혀졌습니다.

 

# 루이지 산투치의 <예수님을 만나다Meeting Jesus> 번역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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