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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때...

by 봄날들판 2019. 3. 23.

하고 싶은 말이 없을 때...

When There’s Nothing To Say

글쓴 이 : 에릭 임멜 수사님 / 예수회  

* 옮긴이 후기 : 오랜만에 에릭 임멜 수사님 글을 옮깁니다. 에릭 임멜 수사님이 근 여섯 달 동안 글을 안 썼는데, 그래서 학위 논문이라도 쓰시나 했는데, 그 궁금증을 풀어 주는 글을 쓰셨습니다. 세상사 다 허무하고 귀찮고 의미없고 보잘것없고 힘들기만 하고 빛도 안 보이고 그럴 때 읽어 보면 좋은 글이에요.  

  

지난 몇 달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한 줄도 글을 쓰지 않았다. 단어를 잃은 사람이 세상에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오늘날 세상은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로 온통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나는 펜실베이니아 대배심원 보고서에 대한 응답으로 명확하고 집중적인 논평을 해야 하며, LGBT+ 친구들에게 증오의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말을 해야 한다.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미국에서 대우받는 방식에 대해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포괄적이고 인간적인 이민 개혁을 위해 공개적으로 외쳐야 한다.

지금 진행되는 2018년 시노드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입장을 취했던 다른 주제에 대해서 긴 목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공공연한 자리에서 복음을 어떻게든 강론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건 내 말이 아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온통 해야 한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런 삶은 너무 감상적이니까.

여전히, 나는 할 말이 하나도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한 달 전 즈음 어머니, 조카딸과 함께 쇼핑을 하러 갔다. 우리는 소품을 파는 하비로비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아마 마이클 백화점일 것이다. 백미러를 들여다보니 조카가 쉬지 않고 입 안팎으로 혀를 붙였다 뗐다 했다. 유치가 흔들려 간신히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우리는 모두 그 유치가 언제 마침내 떨어지게 될지 궁금해했는데, 그 순간 조카딸이 결정했다. 때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 안에서 내가 클리넥스로 손을 감싼 다음 조카의 입에 넣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이가 뽑히고, 약간 피가 났으며, 물병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씻었다. 이가 없는 벌레 같은 느낌, 놀라고 기뻐하는 어린 소녀에게서 뽑은 이빨 요정의 첫 번째 보물을 담은 비밀 봉지가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어느 날 집 근처 대학 캠퍼스를 걸어다닐 때였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위험하게 비틀거리는 여자 옆에서 한 여자가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페달을 밟은 여자는 잔디 쪽으로 옆으로 넘어졌다. 달리던 여자가 비틀거리며 옆에 쓰러졌다. 폭소가 계속 일어났다나는 발걸음을 늦추어서 다음 방향으로 가기 전에 꾸물댔다.

다시 일어나서 여자가 달려갔고, 다른 여자는 페달을 밟았다. 그런 다음 달리던 여자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고고 다른 여자는 계속 페달을 밟았다. 그녀는 잔디밭을 향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돌아서 캠퍼스 건물 뒤로 사라져 버렸다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대부분은 옆의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담배도 피울 겸 잠깐 쉬러 나온 학생들이었다. 우리 모두는 박수를 보냈다.

지난 일요일에, 나는 친구 몇몇과 호숫가에 있는 어느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찍 불어 온 11월 강풍을 피해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흰꼬리사슴 세 마리가 해변을 뛰어 내려왔다. 그것은 마치 드라마 베이와치같았는데, 수영에 거의 적합하지 않은 인간들 때문이 아니라 알몸의 사슴 때문에 그랬다. 우리 중 누구도 전에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강한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모두 확신과 명료성을 추구한다. 이 부서진 세상을 치유하려면 우리한테 방향이 필요하다. 그 목소리를 찾는 일이 지금 나에게 쉽기만 하다면, 나는 뭐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아는 신부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려면 하느님께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 때 우리의 목소리가 거기에 뒤따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유치를 뽑은 일,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일, 호숫가를 따라 달리는 사슴을 처음으로 본 일.

이 짧은 순간들을 떠올리다가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느끼도록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성취를 기뻐하는 사람이다. 나는 예상치 못한 멋진 일을 놀라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또 다른 모습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다.

아마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한다면, 내 목소리가 별로 가치가 없고, 강요된 것이며, 중복되고,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향해 온전히 살아갈 때, 나는 다시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을 때, 어떻게 해서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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