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17일 : 이냐시오적 식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아홉 가지

by 봄날들판 2020. 9. 18.

제17일 : 이냐시오적 식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아홉 가지
Nine Reasons to Embrace Ignatian Discernment
By Gretchen Crowder

 

매년 봄이면 나는 2학년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는 1학년들이 신앙생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그들을 초대한다. 2학기인 봄까지 기다리는 것은, 그때가 되어서야 1학년생들이 안정을 찾은 뒤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 시기의 대부분은 관계/참여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나 역시 그랬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나는 1학년 그 한 해 동안 축구, 연극, 피아노, 학생회, 기타 등등을 시도해 보았다. 신입생 학년이 거의 끝날 때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속할 곳을 찾았다.

그해 봄, 나는 처음으로 학교 교목실에 찾아갔다. 3학년의 교목실 봉사자 그룹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교목실은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 온 열성적인 학생들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일에 열중했다. 이후 고등학교 생활 동안 그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를 위한 기도와 영적 체험을 준비하면서 내 시간을 쏟았다. 나의 틈새 시장을 찾은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려는 몸부림은 평생에 걸친 몸부림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우여곡절을 지나는 데 도움이 되는 알맞은 어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냐시오적 식별은 나에게 그런 어휘를 주었고 그것이 그 첫날 이후로 (몇 번의 직업 선택을 거쳐) 학교 교목실에서 보낸 15년 세월에, 곧 내가 지금 있는 곳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이냐시오적 식별이라는 도구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어떻게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이냐시오적 식별은...

 

1. 자신의 갈망을 존중한다.

다른 사람을 기도로 이끄는 일을 무척 좋아해서 학교 사도직으로 돌아갈지 생각해 보려고 식별 과정에 들어갔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학생들을 위해 십자가의 길 체험을 준비할 때나 미사 준비를 도울 때 얼마나 크게 영감을 받았는지를 떠올렸고 또한 그것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도 깨달았다.

 

2. 자신의 찬/반 목록을 중요시한다.

나는 항상 괜찮은 찬/반 목록을 만드는 걸 즐겼는데, 시간이 지나서야 이 목록이 하느님께도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께서 실은 내가 자신의 길을 식별하는 데 자신의 머리와 경험과 만남을 이용하기를 원하심을 발견한 것이다.

 

3. (적절한) 어휘를 알려 준다.

이 직장에서 저 직장으로, 이 일에서 저 일로 옮겨 갈 때 항상 감정이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내가 귀를 기울이기까지 감정이 내 머리를 때려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나서야 내 안이 메마름의 때임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메마름과 위안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기에 더 일관성 있게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4. 기도를 이끌어 준다.

이냐시오적 식별에 대해 알기 전에는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성당에 가서 앉기는 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길을 잃곤 했다. 크든 작든 결정이 나를 내리누를 때 의식성찰과 같은 방법은 나의 기도를 이끌어 주기 시작했다.

 

5. 자신의 진정한 목표에 집중하게 한다.

전에는 목표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살거나, 근근이 살아가거나, 비 피할 거처라도 유지하는 것, 그런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이냐시오적 식별을 통해서 목표란 그런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과 더 가까운 관계로 나를 이끄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냐시오적 식별은 내가 그것을 나의 목표로 삼는다면 나머지 소소한 것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임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었다.

 

6. 나에게 사랑을 보여 준다.

이냐시오적 식별에서 사용하는 의식성찰과 다른 방법들은 감사에서 시작한다. 내 삶에 있는 축복들을 알아차리는 이러한 연습은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곧 내가 진정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려 주었다.

 

7. 자신의 상상력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몇 시간이나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 상상력이 일종의 주의산만함 같은 것이라고 늘 느꼈다. 이냐시오적 식별은 상상력을 환영하며 크게 꿈을 꾸도록 나를 초대한다. 그래서 어느 꿈이 나를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이끌고 어느 꿈이 나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지 내 감정을 통해서 나에게 알려 준다.

 

8. 나에게 ‘예스’의 힘을 준다.

식별이라는 도구가 없을 때에는 어떤 것에 예라고 응답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끝을 알 수 없으면 그리고 그 꿈이 내게 어떤 안정성을 줄지 알 수 없으면 나는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 일을 아무리 즐거워할지라도 말이다. 이냐시오적 식별은 내가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면 하느님께서 내게 곧바로 도로 예라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일깨워 준다.

 

9.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일깨워 준다.

고등학교 뒷구석에 있는 학교 교목실의 사무실에서 지금 근무하는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여정에서 여러 차례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이 시작이구나.’ 하고 느낀 때가. 앞으로 행복해지게 되든 아니든, 앞으로 이 일이 참된 기쁨을 내게 줄지 말지 상관없이, 이곳이 이제부터 내가 있을 곳이구나라고. 하지만 나는 이냐시오적 식별을 통해서 하느님의 계속되는 피조물임을 깨달았다. 식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참 감사하게도! 내가 하느님의 계속되는 피조물임을 깨닫는 것은 지금 기쁘게 살 뿐만 아니라 다음에 올 것을 기뻐하며 기대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