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지친다는 것에 대해

by 봄날들판 2017. 10. 23.
On Being On Being Exhausted
지친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에릭 임멜Eric Immel 수사님. 출처는 jesuitpost.
끝부분 읽다가 작년 가을에 제주도에 갔을 때, 햇살이 쏟아지던 사려니길이, 범섬이 바라다보이는 법환 마을의 어느 해변길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자연 속에서 기운을 얻어 나오던 그 길들이 생각난다. 
 
Published Oct 19, 2017 in Blogs, Spirituality,  
 
몇 년 전 내 친구는 다짐을 하나 했다. 친구를 더 많이 사귀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말이다. 그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질 계획이었다. 그는 또 직업상 바빴으며, 토요일마다 축구를 했다. 그리고 주변에 이미 친구가 많았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방을 쓴 룸메이트들은 밤늦게야 잠을 잤고 포도주를 마시고 코스트코 라비올리를 신선한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넣어 요리했다. 나는 바의 밖에 서서 담배를 피울 때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도 내가 오마하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었다. 또 학생들과는 그들이 미래에 의사, 변호사, 사회사업가, 세계 여행자가 되라고 꿈을 격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 친구가 이해가 갈 것 같다.
매일 아침이면 나는 꿈속에서 알람 소리를 듣고 힘들게 잠에서 깬다. 구겨진 베갯잇과 침대 구석에서 삐져나온 시트의 여파로 얼굴에 지그재그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건 우울하지 않다. 그저 지칠 뿐이다. 
***
몇 달 전, 시카고에서 처음 나는 여름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다. 나의 버킷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할 수 있는 건 비치 발리볼을 하는 거라고. 루프탑 카페, 큐브 게임, 수제 맥주 거리 축제, 공원에서의 콘서트 관람 같은 것은 관심도 별로 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땀과 모래, 멋진 받아막기로 찌르는 것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7월 4일 독립기념일 휴가 동안 며칠 쉴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도 어려운 일로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타파스로 저녁을 때우면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고 업무 관련 이메일에 답장을 쓰느라고 조카의 메일에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8월 중순에도 며칠 쉬었다. 그렇지만 그 기간에도 모임, 병원 예약, 집 안 청소, 빨래 등으로 분주했다. 그래서 자유로운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9월 중순까지도 비치 발리볼을 하지 못했다. 결국 비치 발리볼을 하기는 했지만 시카고에서는 아니었다. 미시간에서 친구의 결혼식이 열렸는데 거기서였다. 여름이 거의 한물 간 뒤였다. .
나는 당황스럽지 않았다. 과로한 것이니까.   
***

몇 주 전 나의 반 학생이 양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돌아가신 분은 겨우 서른일곱, 젊은 나이였다. 그는 네 세대의 가족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식, 아내, 형제, 어머니, 할머니를 남겨두고. 장례식이 열린 교회는 시카고 남부에 있었는데, 오래되고 작은 침례파 교회였다. 성가대도 없고 몇몇 마음 좋은 여인들이 아카펠라로 성가를 불렀다. 목사가 설교를 하려고 제단에 섰는데, 그는 피곤해 보였다. 요즘 시절에 복음의 사랑을 전하려고 하다가 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활력이 가득했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억양은 더 리드미컬해졌고 눈썹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목사가 말했다. 이 착한 사람이 단지 죽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역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목사는 우리더러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으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흔들어 깨우라고 했다. 그들이 살아 있도록 흔들라고 했다.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버스를 탔고 북쪽으로 65블록을 판자로 창문을 가린 집과 부서진 거리를 지났다. 버스 자리에 앉아서 세상이 지나가는 것을 보는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조금 가라앉았다. 우리 앞에 대면한 모든 것이 떠올랐다. 각종 ‘주장isms’의 긴 목록들, 내가 잘 다스리지 못하는 위협 같은 것 말이다. 그 목사의 좋은 메시지를 들었는데도, 거기에 응답하려는 에너지가 있는데도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은 죽어 가고 세상은 거칠게 돌아간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과 누워 버리고 싶은 마음 사이에 갇혀, 조금 덜 살아 있는 채로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은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다.
***

며칠 전 나는 Title IX 리포트를 조사하는 것에 관한 교육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이것은 성폭행, 학대, 성희롱, 스토킹,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처럼 우리가 아예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 곁에 너무나 흔한 것들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일찍 집에서 나왔기에 얼굴에 여전히 배개자국이 남아 있는 채로 호수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넉넉했다. 길에서 벗어난 나는 물가 가까이 차를 세웠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호숫가로 걸어갔다. 아침이라 아직 부어 있는 발가락 사이 공간으로 모래가 밀려들었다. 그리고 곧 시원한 물에서 발목 깊이에 서 있었다. 잔잔한 물결이 다리 위로 차가운 기운을 장난스럽게 불어넣었다. 그날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해가 난 아침이었고 드디어 가을이 된 느낌이었다. 금빛 태양이 떠오르고 공기는 상쾌하고 신선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조용한 순간에, 며칠 만에, 몇 주 만에, 몇 달 만에 어쩌면 몇 년 만에 가장 단순하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드렸다. “내가 계속 나아가도록 도와주소서.” 그러고 나서 내가 일정이 있다는 것도 다 잊고, 내가 일이 있다는 것도 다 잊고, 이 주에도 할 일이 쌓여 있다는 것도 다 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오래지 않아 나는 차로 돌아와 맨발로 운전을 하면서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지친다는 느낌도 지겹다는 느낌도 불확실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고 준비가 되었다.
그것은 번아웃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축복을 많이 받을 것이다. 

지친다는 것에 대해

저자는 에릭 임멜Eric Immel 수사님. 출처는 jesuitpost.
끝부분 읽다가 작년 가을에 제주도에 갔을 때, 햇살이 쏟아지던 사려니길이, 범섬이 바라다보이는 법환 마을의 어느 해변길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자연 속에서 기운을 얻어 나오던 그 길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