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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13일 : 침묵 속에서 숨 쉬기

by 봄날들판 2017. 12. 20.
제13일 : 침묵 속에서 숨 쉬기
침묵 속에서 숨 쉬기
Breathing in the Silence

오늘 아침 문득 몇 년 전 피정에서 일어난 일을 되새겨보았다. 사순 시기인 3월의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나는 거룩한 침묵 시간에 시원한 공기를 숨 쉬려고 경당 밖으로 나갔다. 내 뒤로 성당 문이 닫힐 무렵 내 뒤에서 30명의 청년들이 완전한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밖에서 몇 번 깊이 숨을 쉬고 나자 침묵이 찾아들었다. 깊이 숨을 쉴 때 내 주위의 세상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당 주차장 건너편으로 한 소녀가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성당 본관에서 성인식을 축하하고 있었다. 건물 문이 열고 닫힐 때마다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그 순간에 우러나오는 기쁨 속에서 숨을 쉬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조지아 대학 야구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땅 하고 치는 소리에 이어 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공동체가 느끼는 즐거움 속에서 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헬리콥터 소리가 점점 커져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리콥터 여러 대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빠르게 움직이면서 불빛으로 이리저리 사정없이 살피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군에서 며칠 전에 한 젊은이가 경찰관을 총으로 쏴 죽여서 그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수색에서 느껴지는 슬픔 속에서 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 침묵 속에서 깊이 숨을 쉬면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경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하느님은 어떻게 보면 동시에 이러한 순간의 모든 곳에 계시다는 깨달음이 가득 밀려왔다. 하느님은 침묵 기도 속에서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느님은 파티의 기쁨 속에서 축하하고 계신다. 하느님은 야구 경기에 있는 공동체의 체험을 음미하고 계신다. 하느님은 어떻게 보면 같은 시간에, 쓰러진 경찰관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로하면서, 또 도주 중인 청년의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그리고 그 청년과 그를 찾는 경찰관 양편 모두가 결정을 내리는 동안 지혜를 주시면서 청년을 찾고 계시는 중이다.
그날 밤 모든 것 안에 선명하게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는 내게 감동이었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있는 일상의 사건들은 많으니까, 그리고 하느님은 그 모든 것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날 밤은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은 특별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나는 하느님의 무한하신 현존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날 밤 침묵이라는 선물 덕분에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 한 줄 감상 : 저자가 피정 지도자인 것 같은데, 평범한 글인 것 같으면서도 이 사람이 말하는 그날 밤의 느낌과 분위기와 감정이 진솔하게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