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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24일 : 감각의 활용

by 봄날들판 2018. 1. 23.
제24일 : 감각의 활용

감각의 활용
Application of the Senses

조셉 테틀로우 신부 Joseph Tetlow, SJ


이냐시오 성인은 오감에 대하여 기도할 때에는 같은 순서를 지킨다고 말한다(영신수련 247번 참조). 좀 더 특징적으로, 관상을 시작하는 데 오감을 이용하도록 제안한다.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며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는 데 말이다(영신수련 106번 참조). 이러한 것이 오감의 전통적인 사용법이다.

그렇지만 감각의 활용 방법 하나는 이냐시오 관상을 무척 독특하게 해 준다. 이를 대개 ‘오감의 활용the application of the senses’이라고 하는데, 영신수련 제2주간을 시작하고 나면 사용하게 된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생애에서 하나의 사건을 매일 각 네 시간 동안 관상하는데, 자정 무렵에 하는 한 시간부터 시작된다. 다음 날 저녁 무렵이면 당신의 기억에 이미지가 가득 차고 마음에는 의미가 가득 차며 마음은 그 영향들로 가득 찬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 자신이 관상한 것에 ‘오감을 활용하는’ 다섯 번째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영신수련 121번).

이냐시오 성인은 당신은 그저 바라보고 들으면 된다고 설명한다. 당신은 “그분들의 영혼의 신성함과 그분들의 덕행과 모든 것의 무한한 부드러움과 감미로움을 냄새맡고 맛보는 것이다.”(영신수련 124번) 그렇지만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복음서에 나오는 사람들이 밑에 서 있던 나무에 다가가서 그 나무를 껴안아 보자. 아니면 그들이 앉았던 곳에 앉아 보자. 당신은 당신이 관상하는 사람의 “영혼과 미덕에 당신의 오감을 활용할” 수도 있다. 부유한 젊은 청년이 느낀 갈망을 느낄 수 있는가?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께서 그의 쪽으로 손을 내미셨을 때 그 손을 물리쳤을까?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오감을 활용함으로써, 이냐시오식 관상은 몸에서 떠나 있는 경험이 결코 아니라, 가장 심오한 몸의 경험이 된다. 이것은 결코 당신과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함께 있는 몸으로 된 정신과 모두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예를 하나 들겠다. 나는 위층방의 구석에 몸을 가리고 있다. 빵을 굽는 따뜻한 향기가 나는 걸 보아서 아침 식사 자리를 차려 놓은 것 같다. 성모님은 베드로와 같이 벽에 기대 앉아 있는데 베드로의 손이 성모님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다. 작은 요한은 토마스의 발치에 머리를 기댄 채 소파에 누워 있다. 둘 다 울고 있다. 거의 말도 없다. 그러고 나서 모두가 작은 소리를 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들이 뛰어올랐다. 예수님이 웃으며 거기 서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답다. 그분은 어머니의 뺨에 손을 대신다. 그러고는 어머니에게 몸을 기울여 이마에 입맞춤을 하신다. 베드로는 거기 그냥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 베드로는 위를 올려본다. 그들이 눈길이 서로 마주친다. 그들 사이에 뭔가 친밀한 것이 오가고 그것에 나는 안도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다. 그러고 나서 나는 예수님이 부드럽게 다른 것을 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셨는지를 보고 놀란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바로 내 앞에 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일어나거라.” 하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다. 그분의 손이 내 얼굴에 닿는 게 느껴진다. 그분은 내게 그분을 올려다보게 하신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나는 그분의 눈을 들여다본다. 나는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분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놀랍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한 뭔가를 깨닫는다. 예수님이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를 갈망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말이다. 그분은 내가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런 장면이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러고 나서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예수님의 벗들 사이에 있는 것에 만족해하면서 내 방의 의자로 다시 돌아와 앉아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