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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순 묵상] 수난 27_그분이 행하고 싶지 않은 기적

by 봄날들판 2018. 5. 24.
수난 27_그분이 행하고 싶지 않은 기적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마태 27,40)


못 세 개를 푸는 것쯤이야 목수의 아들한테는 작고 하찮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작업장에서 그분은 서른 살이 되기까지 나무 다루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에, 나무와 못 사이에 붙들려 계셨습니다. 그분은 냄새와 나뭇결만 보아도 나무가 너도밤나무인지 참나무인지 밤나무인지 구별할 줄 아셨습니다. 나무의 새하얀 조직에 깊숙이 박힌 못 세 개…… 그분이 얼마나 수도 없이 못을 빼고 박았던지요! 그분은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일으키기 쉬운 기적이었을 겁니다. 아예 기적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군중이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 위에서 그분은 그들의 입이 하느님을 모독하려고 열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치아는 모욕을 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병사들이 어깨가 갈색으로 그을려 있는 모습을, 주사위를 향해 열중한 얼굴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날 저녁에 세상의 길 위에 홀로 서 계실 어머니를, 검정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내려올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후회를 가지고 가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구원되도록 하기 위해, 정원에서 첫 번째로 눈물을 흘린 일로 충분했습니다. 채찍질을 당하면서 첫 번째로 핏방울을 뿌린 일로 충분했습니다. 인간의 감옥으로 향하는 이 이상한 여정을 거치지 않고, 지금 고통의 닻이 되고 있는 이 살을 취하지 않은 채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미 잔을 비우셨습니다. 몸이 더 이상 고통을 겪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피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죽는 것은 너무나 쉽기만 할 것입니다. 죽는다고 해서 희생에 더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적은 간단하고도 조용하게 일어날 수 있었을 테지요. 마치 사다리에서 내려가듯 그분이 내려올 수 있었을 겁니다. 천사들이 그 즉시 상처의 벌건 구멍을 장미로 바꾸어 발에 상처가 없는 채로 땅바닥에 닿을 수 있었을 겁니다. 땅에 이르고 나서 그분은 언덕을 내려가실 것입니다. 그들은 베타니아에 있는 라자로의 집으로 갈 것입니다. 바로 그날 저녁에, 두 누이의 다정한 빛 속에서, 마리아가 그분이 놀라운 일들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그분을 믿기를 원한다면 이것이, 내려오는 것이 분명 가장 필요한 기적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요 수천의 순교자를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

우리라면 분명히 내려왔을 겁니다. 우리의 어머니와 우리의 상식은, 여전히 우리 손과 발에 박힌 못으로 우리를 갈기갈기 찢었을 것입니다. 우리라면 언덕에 피를 뿌리며, 그들이 저지른 실수가 마침내는 우리를 들어올리리라는 것을 깨닫고서 두려워하는 사람이 앉아 계신 어좌를 향해 도망쳤겠지요.  

그렇지만 그분은 이런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그분이 그것을 한다면 땅에 발을 처음 닿기만 해도 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다른 모든 기적이 지워지리란 것을 아셨습니다. 몸이 마비된 남자는 다시 거죽 위에 누울 것이고 하혈을 하는 여인은 다시 피를 흘릴 것이며 예리코의 눈먼 이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나병 환자 열 명의 몸은 오래된 쓰라림으로 벗겨질 것이고, 라자로와 다른 이들은 그분이 비우신 무덤으로 다시 사라질 것입니다. 마치 뜻밖에도 말라 버린 거대한 바닷속에 있는 물고기처럼 사람은 조용한 학살 속에 경련을 일으키며 몸부림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이 죽음을 가져오고, 가슴으로 쉬는 그 마지막 숨이 밤에 내리누르는 모든 별에 담긴 금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명과 죽음을 만드시고 별들이 그것을 아는 분은, 그리고 바짝 말라 버린 그분의 입은 “아니오.” 하고 대답했습니다.


* 단어 찾기

wedge쐐기 웨지 갈라놓다 끼어들다 조각  

blasphemy독신 모독 모독적 언동  

parch볶다 굽다 바싹 마르다  

convulsive발작적인 경련성인 경련을 일으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