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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순 묵상] 수난 29_또 다른 천국

by 봄날들판 2018. 5. 24.
수난 29_또 다른 천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 보시고”(요한 19,26)


그분은 자신이 지은 범죄로 내리눌려 죽어 가는 남자에게 낙원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끝나 버렸을 때는, 심장이 멈추고 있는 이에게, 두 눈이 감기고 있는 이에게 낙원을 주는 것은 쉽기만 합니다. 세상이 스스로를 지워 내고 그것의 발톱을 우리로부터 치울 때, 그 꿈으로 자유로이 돌아간 영혼은 이미 낙원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낙원이라는 그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이곳 아래서 찾고자 애썼습니다. 우리의 낙원은 얼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와 시간이라는 사막 사이의 얼굴로, 누구네 집의 불가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다른 사람의 몸이 기다리는 침대의 따뜻함으로, 매일 마주하는 눈과 손가락, 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 있는 세 명의 마리아는 지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더는 어느 누구한테도 침대 같은 이나 불가와 같은 이가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은 똑같이 베일을 가리고 있었고, 이름도 똑같았으며, 똑같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일한 운명인 듯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그 가운데 한 마리아가 시몬의 집에서 그분의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던 것을 아셨습니다. 다른 마리아는 클로파스의 아내이자 어머니의 자매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마리아는 ……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세 번째 마리아의 이야기에는 이처럼 가시 돋친 말이 가득합니다. 그것은 그녀 마음을 찢는 길고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만난 시메온이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라고 한 말이 틀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어머니와 이 아들 사이가 아주 아름다웠던 모습을 찾으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군요. 갓 태어난 아기 주위로 모여들던 목자들과 언덕의 그 소박한 여인이 있던 베들레헴의 별이 반짝이는 밤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사막 바람에 함께 시달리면서 나귀를 타고 이집트로 가던 여정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어떤 날 저녁에 느낀 행복 때문에, 그분이 조용히 어머니를 보던 눈길 때문에,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리라고 희망했던 나자렛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십자가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어머니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분은 뒤에 머물러 있는 사람일지라도 낙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낙원은 얼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계속 소유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그 사람한테 나의 이름이 불려야 하지요. 이제부터는 우리의 낙원이 눈물이 가득한 낙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짜 아들이 다른 사람이었고, 어머니 역시 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 머리카락도 다르고, 추억도 달랐으니까요. 아아, 입양된 고아라는 이 희극을 연기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본성의 동요를 충격을 이겨내게 할 수 있다면.

그렇지만 이것이 몸이라는 부러워할 만한 껍질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친구’라고 말하지만 그 친구라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를 그의 어머니와, 우리의 자식을 그의 자식과 섞이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지막 가르침은 혈연이라는 ‘이교’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큰 고통을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자리를 대신한 요한에게서 그분은 이미 조금 부활하셨습니다. 그분 말씀은 단호했습니다. “그를 당신의 아들처럼 사랑하십시오.” “이분을 어머니처럼 아껴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마치 전날 밤에 “이 빵은 나의 몸을 상징한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울어 보아야 더 이상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 단어 찾기

serene 고요한 조용한 맑게 갠

reincarnation 영혼의 재생 재생 화신

renounce 포기하다 을 부인하다 단념하다

peremptory 단호한 독단적인 결정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