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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예수님의 기적 01_“너희가 믿게 하려고……”(진짜 기적이란)

by 봄날들판 2018. 9. 4.

기적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느냐?”


번역자 한 마디 : 루이지 산투치의 책 <그리스도를 만나다>에서 <기적>이라는 장의 번역을 시작합니다. 여전히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꽤 많아서, 어려운 것은 어려운 대로 설익은 채로 내놓습니다. 이 글은 <기적> 장 중에서 서론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더 번역해 보면 좀 더 분명하게 보일 것 같긴 한데, 전체적으로 작가는 예수님을 그 사랑이 너무 높아서 우리가 알기 어려운 분, 너무나 높아서 우리가 미처 따라갈 수 없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다가가다 보면 글에서 하려는 말이 비슷비슷하게 끝나는 위험이 있지요.  


예수님의 기적 01_“너희가 믿게 하려고……”(진짜 기적이란)


나는 두 가지 유형의 믿는 이(believer)들을 알고 있습니다. 믿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한 사람과, 기적이 믿음에 하나도 보탬이 되는 것이 없고 기적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느끼기까지 하는 사람이지요.

우리는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을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기적이 없었다면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으니 그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을 그들의 말로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교통 체증 시간대에 아니면 장 보는 시간대에 어느 광장이라도 가서 일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성모님이 나타나셨다고 말한다면, 장담하건대 눈 깜짝할 사이에 광장이 텅텅 빌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는 물질주의자, 소위 말하는 비신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바로 뒤에서 따라가는 이들에는, 마찬가지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들에는 이렇게 말하는 내 친구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나한테 기적은 불필요한 것이야. 나의 신앙에는 기적이 필요치 않아.”

우리 모두에 관한 진실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에서 났고 기적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기적을 증언하는 은총을 받은 사람 누구한테나) 기적이란,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노동자가 건물 5층에서 떨어졌는데도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 그것보다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성유물에 손을 대고 나서 마르는 상처보다, 또는 성인의 손에서, 발에서, 옆구리에서 즉시 열리는 다른 상처보다 더 마음 편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곳에서, 5층이란 존재하지 않는 그 땅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상처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처뿐인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들을 그것의 법칙으로 묶어 놓는 자연보다, 우리를 속박 속에 끊임없이 잡아 두는 인과성의 거대한 무게보다, 더 낯설고, 이해할 수도 견딜 수도 없는 것이란 없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당신이 손에서 돌을 떨어지게 하면 돌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저 힘 있게 뛰는 기계의 하찮은 밸브 가운데 하나가 고장 나면 사랑하는 이의 심장이 멈춰 버립니다.

떠오르는 달, 씨앗이 자라 식물이 되는 것, 개미가 겨울을 나려고 양식을 모아 두는 것 ……, 세상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세상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악의적인 얼버무림이라는 유죄가 있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경이롭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은유에서처럼 개미가 말을 하고 목련나무 씨앗에서 사슴이 태어나며 달이 우물에 떨어지는 세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 순간에 천국 아래서 숨 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기적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목마름으로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죽을 지경입니다. 과학은 경탄할 만한 물건을 어지러울 만큼 연속해서 만들어 냅니다. 그것들이 더 복잡하고 놀라워질수록 그만큼 더 그것들은 기적을 일으킬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자연이 우리를 유혹하는 법칙의 네트워크에 놓은 솜씨 좋은 자수품에 제한된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굴욕을 확인해 줍니다. 우리는 거대한 폭포를 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비를 한 방울도 내리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달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을 듣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를 내리누르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합니다.

사람이 만든 기적은 모두 유리 실험관 속 일종의 실린더형의 보빈(감기틀)으로 틀에 넣어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는 보빈도, 유리 실험관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공주가 몸을 굽혀 입맞춤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개구리가 멋진 왕자님으로 변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기적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도움을 주거나 쓸모가 많은 선물을 주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처방해 주는 친절한 행동을 뛰어넘습니다. 

복음은 기적의 밭입니다. 나자렛과 골고타 사이 그 천여 일 사이에, 예수님을 알아보고서 그분께 애원한 사람들을 통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어떤 멋진 사건이 주는 흥분이 없는 채 그냥 넘어가는 장이, 그냥 넘어가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아주 명백합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기적의 원수였다는 사실입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어느 정도씩은 그분께서 행하신 기적 모두가 사람들이 그분한테서 억지로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가엾어 하시는 마음에서 끌어당겼든, 그분의 관대한 마음에서 잽싸게 붙잡았든, 심지어 교활하게 훔쳐냈든지 간에요.

그리고 그분께서 기적을 행하기로 동의하실 때마다, 우리한테만 기적이 쉽고 단순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눈이 열린 사람이나 들것을 버린 다리저는 이나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난 이의 경우처럼. 그분한테는 기적이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으로 인해 그다음에 생기게 하려한 것을 뜻했으며,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을 마법사처럼 되게 했지만 결국 거의 얻지 못한 것을 의미했습니다. 다시 말해 믿음을요.

 ““……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우리는 기적에 대한 욕심이 커서, 중풍에 걸린 이가 뛰어오르고, 등이 굽은 여인이 몸을 펴며, 말 못하는 이가 말을 하고, 야이로의 딸이 임종의 자리에서 깰 때 박수를 칩니다. 어쩔 때는 희망과 위로 때문에 울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한 기적 각각이 보여 준 사실은,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한심한 믿음에는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었기에, 그분의 영혼 깊은 곳에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요.

나는 그리스도의 기적의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맥락에서 말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자마자 우리는 모두 예리코에, 벳사이다에, 가다라에,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베타니아의 무덤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이 멀어 본 적도 있고 중풍으로 누운 적도 있으며 미쳐 본 적도, 풍랑을 만나 죽은 적이 있습니다. 수없이 에파타라는 말씀에 혀가 풀렸으며, “깨끗해져라.”라는 말씀에 종기가 깨끗하게 사라졌고, “나와라!”라는 말씀에 무덤의 돌이 열려 어둠에서 풀려났습니다.

복음에서 진짜의, 결정적인 기적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건장한 두 남자가 일어나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분을 따른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그분께서 우리를 한 번 이상 바라보셨는데도, 우리는 자신의 그물을 손질하며 뒤에 남아 있습니다. 평화롭게, 자신의 아버지와 고기잡이 소년과 함께 탄 배에서 우리는 정말 드문 기적을,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은 놀이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비견할 수 있는 기적을 망쳐 버렸습니다.그분이 천 명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성공한 기적이었고, 어느 누구도 관련지어서 설명한 적이 없던 기적이었습니다. 바로 그분을 따른다는 것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