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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예수님의 기적 28_불필요한 말씀 두 마디(나인의 과부)

by 봄날들판 2019. 4. 22.

예수님의 기적 28_불필요한 말씀 두 마디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3-14)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이 장은 아주 짧지만, 그렇다 해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말씀이 두 마디 들어 있습니다. 복음은 아들이 외아들이고 어머니가 과부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에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크게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부사항은 우리의 가엾음도 역시 더 생생하다고 제시합니다. 아들이 묘지에 묻으러 동행하는 어머니를 위해 세상에서 무엇이라도 남길 수 있다는 듯이, 이것이 어쨌든 다른 슬픔으로 헤아릴 수 있는 슬픔이 될 수 있다는 듯이요. 그렇지만 루카 복음사가는 남자였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천사도 아무것도 모르고 아들 자신도 모릅니다. 어머니는 하느님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간 적이 있어서, 어머니들이 우리의 말을 마시고 우리의 침대에서 자고 해서 우리는 우리가 여자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머니한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계속 깨어 있게 하면 그들은 마치 그들이 우리의 영혼이라도 되는 듯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찬찬히 바라봅니다. 그렇지만 여자가 아이를 배자마자 아무도 더 이상 여인을 알지 못합니다. 그녀는 훨씬 멀리 갑니다. 그녀는 그 날과 밤을 기억하는 척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말 그녀를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인은 그들의 태에 그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어디로 갔습니까?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루카는 모릅니다. 천사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말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 기적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 남자에게 한 것 모두는 우리를 우리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장면에 대해 감정적이 되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기적을 끝내고 나서 요약한 이 말씀 말고는 모두 불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사람을 다시 생명으로, 꺾였던 운명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죽은 아들을 그 어머니에게, 그 어머니에게만 돌려주셨습니다. 소년은 그의 친구들을 위해 사랑 게임의 초기 단계에서 구애했던 소녀를 위해, 아니면 새를 잡으려고 둥지를 놓던 긴 오후들을 보낸 언덕을 위해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관을 메고 가던 이들이 계속 나아가서 그의 모든 부분을 무덤으로 옮겨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분의 친구들이 가서 우는 사람들 속에서, 어머니들 이외의 사람들 속에서 그를 짧은 시간에 찾아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가서 그를 위해 울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한테는 소년이 죽은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들에게 다시 돌려줄 뜻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여인들에게 절대로 손을 대지 않으셨는데, 유일하게 여인들의 신비를 이해하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들이 태어나고 아들이 죽을 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분은 아셨습니다. 또한 관 뒤를 따르는 그 애도 속에 있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그 슬픔이 어떤지도 아셨습니다. 장례 행렬을 멈추게 하셨을 때조차도, 그분이 유일하게 건네신 말씀은 다른 모든 이가 그날 어머니에게 해 준 말과 같았습니다. “울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