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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7일 : “나는 바로 여기 있단다.”

by 봄날들판 2020. 5. 14.

제7일 : “나는 바로 여기 있단다.”

God Right Here

By Loretta Pehanich

 

This story is inspired by Matthew 14:22, following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이 글은 마태 14,22 이후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배에 타게 하셨습니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방금 목격한 기적을 음미하며 그분과 함께 호숫가에 머물고 싶었지요. 수천 명을 먹이시다니! 나는 그저 그분 곁에 서서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배에 타게 하셨고 나는 다리를 접고 앉아 배의 측면을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탄 배가 물결에 밀려날수록 그분 모습이 점점 더 작아졌습니다. 내가 사람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흩어지는 모습을 볼 때 그 소리가 군중의 웅성거림 위로 갑자기 내렸습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군중이 구불구불한 언덕 너머로 무리 지어 천천히 물러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애정 어린 몸짓으로 손을 뻗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치유를 일으키는 움직임이었을까요? 아니면 집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라고 주문하는 또는 고압적으로 말하는 명령이었을까요?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그분의 말씀을 다르게 느꼈을지, 마치 예수님께서 각 영혼에게 있는 필요를 구체적으로 논하신 것처럼 느꼈을지 궁금했습니다. 내가 알기로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사랑 가득하면서도 권위 있는 어조로 말씀하셨기에 저마다 다르게 듣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렙, 당신은 지금 집에 있는 룻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누군가가 깊은 마음속에서 이런 말을 들으리라 상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갈렙은 생각하겠지요. “, 그래. 룻이 정원을 넓힌다고 해서 내가 돌을 치워 주기로 약속했었지.” 어쩌면 저기 물러가는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이 갈렙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저는 멀어지는 이 배에 있고 싶지 않아요. 말씀과 행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목격하면서 호숫가에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나는 바로 여기 있단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이런 말씀을 느꼈습니다. 놀라운 현존이 내 안 깊은 곳에 그 거룩하신 분을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바로 여기 있어.”

그리고 같은 배에 있던 제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 뒷전에서 잠드셨던 때 기억나지? 우리가 무서워서 그분을 깨웠잖아. 그리고 그분께서 바다를 잠재우셨지.”

나는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와 예수님 사이가 더 멀어지자 배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여기 있단다.”

나는 바닷가에 머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지금은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그 배에 계심을, 내가 그곳에 있기를 바라시고 적어도 완전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명으로 옮겨가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이 배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떤 해안에 가 닿게 될까요?

나는 여기 있단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분명히 그분이 바로 여기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닷가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주머니나 가방에 남은 빵 또는 여분의 물고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집에 가져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고 기적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남은 음식이 일주일 동안 식구들이 먹을 양식이 되겠지요. 어쩌면 그 음식이 마치 만나처럼 다음 날 아침이면 식탁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마침내 나는 수평선 위에서 점처럼 작아진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려 아직 모르는 해안가를 향해 앞을 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나무에 졸졸 흘려 주는 듯한 물의 소리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행은 길면서도 조용하겠지요. 예수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앉아 있을 때,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 소리만이 내 생각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난 혼자가 아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현재의 순간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기도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나는 핸드폰에 반복 알람을 설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람의 이름은 나는 여기 있단다라고 붙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의식 성찰을 통해) 최근 몇 시간을 돌아보도록 내게 일깨워 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께서 은유적인 해안가에 서 계신 곳에서 멀어지고 있는데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나와 함께 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