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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님의 묵상> 나의 세상이 작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크다

by 봄날들판 2020. 9. 9.

나의 세상이 작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크다
My World May Be Small, but the World Is Still Huge


미국 예수회원인 에릭 임멜 수사님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몇 개 글을 썼는데, 가장 최근 것을 번역했다. 미국에서는 아마 신학기 개강을 했을 텐데,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에 약간 숨통을 열어 주는 글이다. 

Image by Public Co from https://pixabay.com/?utm_source=link-attribution&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image&utm_content=2208931 Pixabay

thejesuitpost.org/2020/09/my-world-may-be-small-but-the-world-is-still-huge/

 

 

이틀 전, 새벽 4시 45분 무렵부터 핸드폰 알람이 울려댔다. 나는 5시 15분에야 잠재 의식 속에서 소리를 쳐 대는 이상한 괴물들이 가득 찬 꿈을 멈추고서 알람 소리를 알아챘다. 지난 반년 동안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적이 있었나. 비몽사몽 일어나면서 이번 학기에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혼잣말을 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지난 반년간 딱 한 번 갔을 뿐이다. 6시 직전 나는 체육관에 가는 다른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섰다. 그 광경을 보니 거의 모든 ‘훌륭한’ 아이디어들이란 것들이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 후 8시 20분에 마찬가지로 거의 반년 만에 처음으로 학교 본관 강의실에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내가 지금 삐걱거리고 불완전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예전에 알던 세상으로 다시금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틀 전 그날 아침에 나의 세상은 아주 약간 커져서, 지난 반년간 내가 체험했던 ― 무슨 말인지 당신도 알겠지만 ― 것보다 정상 상태에 좀 더 가까워졌다. 
솔직히 말해 그런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

이 말은 3월 11일에서 8월 31일 사이의 존재 방식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매우 보호받고 있어서 코로나19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했지만, 동시에 팬데믹이 뉴스의 머릿기사에서 내 집으로, 멀리 떨어져서 보는 호기심에서 눈앞의 두려움으로 극적으로 옮겨갔을 때 나의 생활 역시 변했다. 
내 방에서 보낸 시간이 지난 4년을 다 합한 것보다 지난 반년이 더 길다. 손을 씻은 횟수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전에 하루 동안 하이파이브한 사람 수가 지난 반년 동안 하이파이브한 사람 수보다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나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사람들한테 소리치고 싶은 때는 얼마나 많은지 다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전에는 내 삶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다. 내 생애 38년 만에 처음으로 어쩌면 식구들을 한 해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보내게 될 것 같다. 
분명 지난 반년 동안 좋은 일도 있었다. 금요일 밤의 카드 게임, 줌zoom으로 하는 친목 시간, 여러 온라인 사도직들, 더 열성적으로 책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기회를 가졌고, 옛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는 무력함과 인내를 더 많이 배우는 은총도 있었다.
그렇지만 도망 중인 아주 작은 살인자 같은 것이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이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그것은 넓게 퍼진 불평등을 비추었다. 인종, 기아, 일, 배움, 부유함, 리더십, 지역 사회, 책임 그리고 공중 보건에 대한 질문에 불을 붙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것 때문에 많은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서서히 지난 반년 동안 거친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기대하기 시작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

지도맵에서 길찾기를 해 보면 내가 사는 곳은 대서양에서 약 10킬로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반년간 대서양의 바다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개강 전날 친구 다미안과 나는 잠깐 운전을 해서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어디를 갈지 잠깐 식별하고 나서 메인주 글로체스터에 가기로 정했다. 2012년 1월에 30일 침묵 피정을 했던 곳이다. 그 피정 동안 아침이면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온화한 메사추세츠주의 겨울날씨 속에 걸어다녔다.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나는 아침 기도의 일부분으로 매일 세 곡을 들었다. 세 곡의 가사는 여전히 나에게 들려온다. 나는 그저 아름다운 것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내 진짜 삶이 시작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래서 침묵을 통해서 듣는 법을 배웠다. 
몇 년이 지나 친구와 그곳에 서 있으니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가 생각났다. 나와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고 모로코 사이에 파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 그 바다의 광대함에 놀랐던 일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그 바다를 건너면서 얼마나 힘들고 영웅적인 여정을 지났을지 묵상하기도 했다. 태양이 서서히 바다 위에 반짝거리는 불꽃을 내뿜으며 내가 있는 곳에서 나 너머의 드넓은 곳으로 물처럼 흐르는 불의 궤적이 타오르게 했던 것을 기억했다. 내 앞에 거의 끝없는 바다가 보였지만, 그 물결 아래에 숨은 신비를 숨기고 있는 바다의 수면에서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내가 전에 느껴 본 적 없는 거룩한 친밀감을 주었고, 그 이후로 그것을 계속 붙잡으려고 애썼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바다의 가장자리에 선 나라는 작은 존재를.
몇 년이 지나 다시 그 바다를 바라볼 때, 지난 반년 동안 너무나 작게 느껴지던 나의 세상이 다시 활짝 열렸다. 내 말은 식당에서 안전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거나 마스크를 하지 않고 산책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여전히 여기 있어서 내가 탐험하고 소중히 품을 수 있도록 언제나 열려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것은 그거면 된다. 그저 세상이 얼마나 큰지를 잊지 않고, 내가 작기는 하지만 그 세상 속에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그것 말이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스크가 필요할 것이고, 교회, 체육관, 교실은 신중하게 개방하게 될 것이다. 포옹은 계속 자제가 요청될 것이고 비누도 더 많이 필요하겠지. 개혁, 회개, 화해가 필요할 것이다. 많은 성과를 쌓아서 앞을 향해 소중한 발걸음을 옮기기까지 그전에 우리는 계속 뒷걸음만 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바다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