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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성 영어 블로그 번역

어느 수사의 묵상> 때로는 내려놓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by 봄날들판 2020. 10. 18.

어느 수사의 묵상> 때로는 내려놓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Sometimes I Have To Let Go and It Is the Only Thing I Can Do
2020년 10월 14일
출처 : https://thejesuitpost.org/2020/10/sometimes-i-have-to-let-go-and-it-is-the-only-thing-i-can-do/ 

저자 Eric Immel, SJ

몇 주 전 일이다. 유튜브 앱에 추천 영상으로 영국 출신 파쿠르 선수 7명으로 구성된 Storror(https://www.youtube.com/user/StorrorBlog)의 동영상이 떴다. 나도 모르게 그 영상을 봤다. 그러고 나서 다음 영상도, 그다음 영상도 보았다. 건물 꼭대기와 어둡고 습한 물 위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멋진 도약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이대가 높은(그렇지만 늙지는 않은) 괜찮은 파쿠르 운동선수가 되기에 필요한 것을 갖춘 것 같은데. 예전에 체조를 해서 점프도 잘하고 균형을 잘 잡을 수 있고, 무릎이 아플 때도 잘 없고, 무엇이든 내게 남은 청춘의 모습에 간절히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콩 볼트와 프리시전 점프(precision jumps)를 연습할 기회가 있을지 찾기 시작했다.

지난주 뉴햄프셔주의 화이트산맥으로 가기로 한 주말 당일치기 여행이 다가오자 친구들과 나는 미 북동부의 대자연과 지금 한창인 단풍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했다. 금세 스위프트강을 탐험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그곳은 유속이 빠르면서 물 위로 드러난 바위가 많은 얕은 강이다. 이곳이라면 분명 새로 발견한 파쿠르를 향한 열정을 연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모두 출발해서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가볍게 발을 디디고 모두 바위에서 바위로 가볍게 발을 디디기도 하고 강둑에 바짝 붙어 가기도 하고, 때로는 밑으로 수심이 깊은 바위로 어떻게 건너갈지 헤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떤 큰 바위 하나로 건너뛰면 멋진 경치도 보고 강도 건너갈 수 있겠다 싶었다. 위로 뛰어올라서 발이 단단히 착지했는데... 그러고 나서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는 기세 탓에 바위에 무릎과 가슴이 부딪쳤다. 나는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손가락으로 바위에 얇게 튀어나온 부분을 잡았다. 겨우 한 뼘 아래로 차갑게 흐르는 계곡 물살 위에 잠깐 매달려 있을 때,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발을 시작으로 나는 서서히 물속으로 몸을 낮추었고, 패배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내려놓고 추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지난 몇 달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내려놓기’가 아닐까. 지난 3월만 해도 부활 대축일 무렵이면 코로나19가 끝나겠지 하고 굳게 믿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5월이 왔다가 갔고 6월, 7월도 역시 그랬고, 그런 것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팬데믹 상황에 빠른 해결책이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다 내려놓았다.

***

3월 중순 무렵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밤에 오랫동안 산책하곤 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청량한 초봄의 공기가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폐에 밀려들기를 바랐다. 어쨌든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장은 규범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마스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더 분명해지자 불편감을 내려놓았고 아주 아주 극소수의 예외가 아니고서는 외출할 때 꼭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오랜 벗들과 멋진 산책을 했다. 일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기에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유쾌하게 산책을 하고 났을 때 나는 작별 인사로 그들과 허그를 하고 싶었다. 언제 또 다시 그들을 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안아 주지 않았다. 그것 역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런 내려놓음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잃어버린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나라에서만도 215,000가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 전 세계적으로는 사망자가 백만 명이 훨씬 넘는다. 실직자가 된 사람도 있고, 사업장들은 폐업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생은 그들만의 특징적인 경험(―졸업식을 말함 : 역자 주)을 빼앗겼고, 인격 형성기에 처음 들어가는 학생들이 컴퓨터 화면 뒤에서 학습을 시작해야 했다.

대부분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코로나에 대한) 통제는 사라졌다. 깊은 곳으로 더 떨어지는 것 말고 선택이 없다. 내려놓는 것 말고 달리 선택이 없다.

***

가을 나무는 결국 앙상하게 되기 마련이다. 잠시의 아름다움이 지나고 나면 잎사귀가 떨어진다. 그들의 떠남이 겨울의 굳건함을 향한 길을 낸다. 그렇지만 칼 라너가 관찰한 것처럼 겨울에는 숲속을 더 깊이까지 바라볼 수 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힘뿐만 아니라 따뜻함과 서로를 향해 우리를 다시 끌어당기는 힘도 가진 미지의 것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젖기는 했지만, 나는 그날을 잃지 않았다. 내려놓고 나서, 피부를 찌르는 듯한 수영을 하고 나서 다른 방향으로 기어 나왔다. 신발이 젖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즐거웠다. 그 어떤 것도 그날의 기쁨과 평화, 아름다운 햇살, 오색의 단풍, 거세게 흐르는 물소리, 여기저기 계속 뛰어다니는 스릴을 빼앗을 수 없다. 마침내 나는 몸을 말리고 나서 체온을 회복했고 편안하게 잠을 잤다.

지금은 내려놓음의 시기인 것 같다. 우리에게 바로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다. 결국, 더 큰 무언가에, 아직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어쩌면 조금 두려운 무언가에, 그리 멀리 있지 않은 무언가에 희망을 안고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신망애 삼덕이니까.

Photo by Scott Goodwil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