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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사람과의 만남 04_예수님의 사랑스러운 사람

by 봄날들판 2020. 11. 5.

사람과의 만남 :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사람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 10,38-39).

골고타 언덕을 거꾸로 뒤엎으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시고 고뇌로 고통스러워하실 곳인 겐네사렛의 정원에서 옆으로 한 발짝 비킨다면, 아마도 나는 베타니아의 저 작은 집을 이용할 것입니다. 진흙 바닥과 장미와 돌무화과나무가 있는 그 집을요. 그분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던 곳이요 그분에게 지상의 영토였던 곳을요.

그곳은 머리 둘 돌조차 한 번도 가진 적 없으신 분을 위한 집이었습니다. 냄비와 프라이팬이 부딪치는 소리, 빵 상자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소리, 물 끓는 소리, 햇볕 잘 드는 자리에 누운 게으른 고양이가 기분 좋게 갸르릉 대는 소리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친구로서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늘 분주하고 일에 대해 여왕처럼 행동했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하녀와 같은 이였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일을 하면서도 항상 일이 밀린 가정주부의 시비조의 태도가 약간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그분의 발치에 앉아 듣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어린이가 된다는, 동화 이야기를 듣는 게으른 기쁨에 자기를 맡긴다는 자그마한 비겁함을 받아들였습니다.

마르타도 마리아도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집에 아주 자주 오시고 라자로의 친구였는데도요. 그렇지만 (겉에서 보기에) 그들이 그분과 사랑에 빠진 듯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감탄과 헌신, 애정과 감사, 그리고 모든 가슴 뜀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계속해서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의 정결한 상징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운 사람(honey)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장면을 바꾸어 봅시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고, 용서받은 창녀가 있었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져온 막달레나가 있었고, 그들의 아들을 위해, 그들 모두를 위해 그분께서 기적을 행한 어머니들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자렛의 마리아(성모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남이 알지 못하는 안식이었습니다. 일종의 기쁜 소식 속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분노나 못이 없는 낮은 목소리의 복음이었습니다. 여자들이 만들어지고 나서 오랜 세월 후에 여자들을 발견한 것은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세계의 영혼에게 새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화가이자 의사인 루카 복음사가의 팔레트에서 나온 앵티미스트의 이 그림은 아름다운 농담으로 끝맺습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확실히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발치, 돌바닥 위 깔개의 저 가장자리에는 봄이며 물이며 사랑이며 아주 아름다운 정원 같은 온 세상이 그분의 목소리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타, 분주한 그녀는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무리의 밖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마리아와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들락날락하면서도 부엌문을 열어 두었고, 그래서 두 손이 밀가루 반죽 속에 있을 때도 한 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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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one 낮은 목소리의 저음 저의 조용한 어조
agitated 쑤석거린; 흥분한; 동요한; 세상의 관심을 환기한.
pastime 기분 전환 오락 유희 소일거리
admiration 감탄, 칭찬
devotion 헌신, 전념
chaste 순결한 순정한
bewitched 매혹된 마법에 걸린 넋을 잃은
naugurated 취임하다 새 시대를 열다. 시작하다 식을 열다
intimiste 앵티미스트 /실내화가 (일상적 대상을 개인적인 정감을 강조하여 그리는 화가)
badinage 농담 놀림 야유
celestial 하늘의 거룩한 뛰어나게 아름다운
matting 깔개 멍석 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