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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7일 : 균형의 영적인 의미

by 봄날들판 2017. 11. 21.

제7일 : 균형의 영적인 의미

흔히 사람들은 균형에 대해 말할 때 저글링을 잘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균형 잡힌 생활이란 그와 비슷한 것이어서, 모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모든 관계가 건강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균형을 정확한 전략과 의지력을 통해서 이루어 낸다.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균형은 절제(temperance)와 더 관련이 깊다. 즉 가장 근본의 원칙들이 우리의 열정을 저지하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파울라 허스톤은 자신의 책 <은총의 길로>에서 절제란 대중의 언어에서 잘못 이해되어 와서, 삶의 쾌락을 불건전하게 부정하는 것이라고 오해되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인은 초기부터 영적 균형을 중요시했다.

이냐시오 성인은 ‘무질서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현명한 선택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욕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절제를 실천하지 않을 때, 결국 우리는 애착이 무질서해질 것이다. 절제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갈망과 열정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서 고귀하게 여기지, 끊임없이 자신의 생활을 그러한 갈망과 열정의 계속되는 흐름에 부화뇌동하여 다시 배치하지 않는다.

궁지에 몰리거나 절박할 때, 아니면 재촉을 받을 때마다 발견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절제를 좀 해야 한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두려움 때문이든, 압력을 가해야겠다고 필요가 있어서이든, 실현 불가능한 기대 때문이든, 행동을 취하도록 몰릴 때면 나는 내 완벽하게 좋은 열정이 나에게서 멀리 달려가도록 허락한다. 열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지도 않다.

우리 대부분은 바울라의 이야기를 말한다. 딸에게 나무랄 데 하나 없는 결혼식을 치러 주고 싶은 마음에 몇 주간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한번은 내 여동생과 매부가 집에 왔을 때 우리는 하루 종일 관광을 하고 집에 와서 멋진 저녁 식사를 했다. 오후 8시에 애플파이를 만들려고 내가 속재료를 꺼내자 여동생이 나를 뜯어 말렸다. 내가 집에서 만든 디저트를 대접하겠다고 계속 우기자 웃으면서 여동생이 물었다. “언니, 각성제라도 먹고 있어?” 나는 너무 피곤해서 먹기도 힘들 파이를 만드는 노예가 되기보다 쉬면서 가족들과 영화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마음먹었다.

편집자로서 나는 절체를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고를 ‘완벽하게’ 만드는 일을 결코 끝내지 못할 것이다. 작가로서 나는 이 장면을 16번째로 고쳐 쓰는 일은 필요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때면 기질을 훈련하게 된다.

부모는 자녀들을 놓아 주어야 할 때가 되면, 아무리 자녀의 생활을 계획하거나 친구를 선택하는 데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라도 절제를 실천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를 돕고 싶은 선한 갈망이 있을지라도 지혜로이 절제해야 한다.

절제가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은 우리의 사랑을 자유로이 즐기게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쓸 때면 나는 거기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절제가 나에게 글쓰기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해 주면 나는 글쓰는 일을 내려놓고 다음 일로 온마음으로 접어든다.

자신이 압박을 받고 서두르거나 간절한 상황을 한 번 말해 보자. 그런 상황에 관해 당신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고 거기에 어떻게 절제를 사용할 수 있을지 말할 수 있는가?

사진 출처 : 플리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