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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기적: <예수님을 만나다> 번역

예수님의 기적 26_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by 봄날들판 2019. 4. 22.

예수님의 기적 26_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 7,6-7)

 

복음 전체에서 정말로 가치 있는 기적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백인 대장의 기적입니다.

누가 나한테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을 껴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나는 그를 선택할 것입니다. 가슴이 전쟁에서 생긴 상처와 흉갑으로 뒤덮인 저 이교도를요. 그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주피터, 머큐리, 비너스 같은 신과 벨로나와 마르스 같은 전쟁의 신을 섬겼지요. 로마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막사에서 그들은 그에게 단 한 가지 법만을, 가장 강하고 유일한 한 가지 믿음, 그 자신의 칼에 대한 믿음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씨 좋은 아침에, 이 군사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믿음과 완벽한 자애의 아주 중심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서 온 여인(또 다른 이교도로서 기적을 이끌어 낸 여인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 역시 마찬가지로 멀리 떨어져서 일어났습니다.)은 자기 딸을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카파르나움의 백인 대장은 자기 노예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로마에 있을 때는 노예란 사고 팔 수 있고 때릴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그는 노예가 가치를 지니며 애정뿐만 아니라 정복된 나라의 주민에 대한 소박한 탄원을 받을 만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전 세계의 지배자인 로마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가 상당히 더 어려운 일이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백인 대장의 말과 행동은 정중함과 관대함을 발산합니다. 호레이스와 세네카가 말한 문명화에 속할 수 있을 만합니다. 그렇지만 뭔가 다른 곳에서 온 것이 또 다르게 있었습니다. 그 다른 것이란 그가 노예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백 개의 강한 분대와 승리하는 독수리의 빛의 전쟁을 거치면서 대장은 인간 생명에 대한 부드러운 감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피의 목숨을 거래하고, 분대원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남자가 죽어 가는 노예의 베개 옆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백인대장의 복음의 전체가 그의 노예에게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를 문가에서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설득을 당했습니다. 노예는 그의 무조건적인 세례였습니다. 자기 집에서 가엾은 사람을 돌보고 그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예수님을 그의 지붕 아래로 모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 말고도,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로마의 제7군단의 자존심은 야만인의 발치에서 너덜너덜 부서졌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다 해졌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지만 이러한 말 속에조차 명령의 숨어 있는 암시가 있었습니다. 관리의 겸손함이 예수님을 그 집의 문가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고 고압적이어서, 평생 병사들한테 명령을 내려 온 이의 목소리이자, 겉으로 드러난 모든 행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격한 지위의 감각이 있었습니다. 규정과 옳은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이 반응, 태도에 바탕한 것, 백인 대장의 마음에서 가장 세심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백인 대장은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말씀을 듣거나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스승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이분을 그의 집으로 들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전보다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말씀으로 충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인 대장의 집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우상이 오랜 상들과 페노플, 갈리아 땅, 누미디아, 그리고 멀리 떨어진 아시아에서 얻은 트로피를 만났습니다. 비둘기처럼 두려움 없는 날개를 가졌습니다. 그 장식품들은 더 이상 해를 끼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것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노예는 살아 있고 이미 집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가슴판과 머리보호대를 하고 있을 그리스도의 어느 성인의 집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16세기 작품.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찾아온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