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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과 함께하는 31일 여정 번역

제10일 : 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by 봄날들판 2020. 6. 7.

제10일 : 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Finding God in the Birds

By Shemaiah Gonzalez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자란 저는 새라고는 비둘기만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해변에 갔을 때는 다르긴 하지만요. 엘에이에서 비둘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지요? ‘날아다니는 쥐라고 해요.

그것 말고 새에 관한 경험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한 동명의 영화 <>에서 본 것이 유일합니다. 할로윈 시즌이 되면 해마다 지역 방송국에서 그 영화를 틀어 주곤 했지요. 그래서 네, 나는 조류 애호가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열두 해 전에, 남편과 나는 태평양 연안 북서부로 이사 갔습니다. 그곳은 매일 오후 마당에 열 가지 제각기 다른 종류의 새가 찾아와 노는 그런 곳이었지요. 어느 날은 벌새가 꽃 속에서 꽃의 꿀을 따 먹으려고 들른 모습을 발견하고 놀란 적도 있습니다. 찌르레기 떼가 우리 집 마당에 내려앉아 벌레를 찾다가 느닷없이 한 무리로 날아간 적이 있습니다. 가끔 흰머리수리도 보였는데, 그 새는 집에서 멀지 않은 워싱턴 호수 위로 높이 날며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까마귀와 미국지빠귀 부부 사이에서 둥지를 지키려고 하는 끝없는 드라마였습니다.

남편은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오면서 소리치곤 했습니다. “다시 시작되었어!”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인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커피 두 잔을 들고 데크로 나가서 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지빠귀 부부가 둥지를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날 까마귀가 그들에게 협공으로 다가와 지빠귀 부부를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둥지를 아무도 지키지 않았지요. 한 까마귀가 몰래 쳐들어와 알을 훔치고 이웃집의 지붕에서 그것을 먹어 치웠습니다. 지빠귀가 머리 위에 있는 전화선에서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맺힌 채 내가 말했습니다. “새가 우나 봐.”

남편은 좀 더 실제적인 말을 했지요. “그래서 쟤네들을 까마귀의 살인’(영화 제목이기도 함)이라고 부르나 봐.”

이렇게 말하고는 가위를 쥐고 다시 작업하러 갔습니다.

나는 커피잔을 들고 그 자리에 더 머물러 있을 때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하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잘 아는 말씀이었는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에 대해 이야기하신 산상수훈의 구절이었습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마태 6,26-27)

전날 밤에 불안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에서 나는 빨리 여행 가방을 꾸려야 하는데, 가져가야 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빠뜨렸습니다. 아니면 운전을 하고 있는데,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즈음 이사 때문에 바빴었는데 내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지빠귀가 괜찮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살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괜찮으리라고 느꼈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을 테니까요. 나한테는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일깨움이 필요했습니다.

올려다보니 지빠귀 한 마리가 부리에 가득 건초를 물고 있었습니다. 둥지를 다시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