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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기+여행기 수다

성당 여행 - 길에서 마주치면 꼭 한 번 들어가 볼 만한 곳

by 봄날들판 2020. 6. 15.

제목 그대로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한 번쯤 들어갈 만한 성당을 적어 보려 합니다.  
시간을 내 찾아갈 정도는 아니어도 집과 멀지 않아서 그냥 한 번 가 볼 만한 거리에 있다면 아니면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가 눈에 띄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 보세요. 


* 제기동 성당
1950년대에 돈암동 성당이 석조 성당으로 완공되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제기동 성당도 비슷하게 그 본당을 따라 석조로 지었다고 들었다. 1950년대면 상당히 오래전인데,, 콘트리트로 지었다면 지금쯤 재건축을 했을 테지만 석조라서 튼튼하게 지금도 서 있다. 제기동 로터리에서 길을 가다가 왼쪽 작은 언덕 위로 시선을 돌려 위압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단단함과 견고함이 느껴지는 성당을 보고 있으면 든든함을 느끼게 된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에 나무 기둥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벽도 나무로 되어 있어서 제대 주변의 대리석들이 아니면 석조 건물이라는 느낌이 좀 덜해지지만.... 오히려 그 나름의 소박함으로 다가온다.    
이 성당은 지하에 있는 성체조배실도 특이한데, 원래 지하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긴 형태의 성체조배실로 만들었다. 성광 안에 모신 성체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예수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으응? 하면서 눈을 비비며 자세히 보면 성광 뒤로 유리벽이 있고 그 뒤로 (다른 데와 다르게) 다시 벽이 있는데 그 벽에 예수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각도나 불빛 때문에 그 그림이 성광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건데, 성체조배실의 정신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치라는 생각이 든다.  
화창한 날 산책 중에 작은 언덕 위에 이 성당이 올라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면 한 번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 목3동 성당 
제기동 성당이 돌의 견고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목3동(예전 등촌동) 성당은 나무의 따뜻함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당이 그냥 평범하고 별로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 성당에 들어선 순간 어떤 따뜻함이 피어오른다. 어느 토요일, 그 동네에 이사를 마치고 그날 오후 본당 사무실을 찾아 동네를 헤매다가 주택 사이에서 큰 삼각 지붕을 마주했을 때 사실 별 기대가 없었다. 본당 사무실 방문을 마치고 성당 문을 빼꼼하게 여니 마침 초등학생들이 2층 성가대석에서 성가를 연습하고 있었나 보다. 성당에 가득 채운 아이들의 합창이 나무의 울림에 더한 건지 참 아름답게 들렸다. 
청년회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여러 사람에게 들은 것은 성당을 지은 과정에 대한 전설 같은 것이었다. 건축을 한 신부님은 한평생 성당 건축만 하신 분인데, 나무를 구하기 위해 캐나다인지 미국까지 가서 직접 나무를 골라 수입했다고 한다. 공사 건설 현장을 직접 지휘하셨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약간 짙은 색인데 흑단이라는 나무로 워낙 나무가 단단해서 바위와 부딪치면 바위가 깨진다는 전설도 들었다. 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여러 청년한테 들었는데 나중에는 구역장님한테도 들었고, 하여간 신자들이 성당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무는 전체적으로 갈색에서 황토색까지 색깔이 섞여 있다. 그 색깔이,,, 코팅을 잘해서 그런 건지 워낙 나무 색깔이 그런 건지 참 예쁘다. 여기 벽 색깔을 그 느낌을 보고 나면 다른 곳에 가서 벽을 나무로 한 곳을 보아도 왜 저렇게 멋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나무결이 그냥 직선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파도치는 느낌이라서 마치 어떤 위대한 예술가가 붓으로 춤을 추며 그린 듯하다.  
우중충하고 쌀쌀한 날 어쩌다 이 성당을 만났다면 한 번 들어가서 따뜻함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 대치2동 성당
스테인드글라스하면 명동성당이나 중림동 약현 성당 등을 떠올리지만, 대치2동 성당도 꽤 의미 있는 곳이다. 1992년 축성식을 한 이 성당에서 최영심 작가의 초기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 2동 본당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설명까지 있다. http://www.dc2.or.kr/sub/sub4_2.php 이런 설명을 볼 수 있다. "본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건립 당시 성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피정의 집에 잠시 머무르던 최영심(빅토리아) 유리화가에게 맡겼다. 특히 훌륭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는 훌륭한 장인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최영심 작가의 남편이며 오스트리아 유리화 장인인 루카스 훔멜 브룬너(Lukas Hummel brunner)가 직접 맡아서 하였으며, 모든 제작 공정은 오스트리아 현지 유리화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겉에서 보면 대치2동 성당은 1990년대 신자가 급격히 늘 때 지은 성당들이 여럿 그렇듯이 조금 거대하고 육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회색 건물은 그리 특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친구의 안내를 따라 계단을 올라 성당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들어가면서 깨달았다. 최영심 작가의 스테인드글래스 작품을 모은 화보집을 여러 번 보면서 인상 깊게 본 몇몇 작품 시리즈가 있는데, 그 작품들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성당 안은 뭔가 느낌이 좋다. 내가 처음 간 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창에서 최영심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바깥의 강한 햇빛을 막아 주고 있었다. 높은 천장을 가진 성당 안에서 뭔가 안전하고 위안을 받는 느낌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그라데이션적인 느낌들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느낌도 있었다. 예술가가 성전을 만드는 데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면 말로 하지 않아도 어떤 것을 전달할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일깨워 주는 성당이 이곳이다. 
너무 밝은 날, 햇빛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길을 걷다가 대치2동 성당을 만난다면, 잠깐 들어가서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 주는 차분한 그늘 아래서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진 출처 : 대치2동 성당 홈피

* 천호동 성당
천호동 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먼데,,, 전철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걸린다. 버스에서 내려 유치원, 사제관, 넓은 주차장, 교육관, 성당 등으로 복잡한 성당 부지의 규모에 놀라고 한결같은 회색빛에 실망하다가 문득 눈을 돌리면 감탄을 하게 된다. 지금쯤 모두 피어 있겠지? 아름다운 장미 정원 말이다. 
서울시에서 보조금을 받아 만들어서 누구나 찾아갈 수 있도록 개방된 공간이라고 들었는데, 각종 장미와 꽃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다. 덩굴 장미로 만든 문, 정자 등 갖가지 구조물도 있고 십자가의 길이 이어져 기도하기에도 좋고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예전에 어느 6월에 결혼식 때문에 갔다가 지인들과 각종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으면서 한참 즐겁게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천호동 주변이 대개 평지인데도 성당이 있는 지역은 살짝 언덕이 있어서 장미 정원이 언덕에 비스듬히 자리잡고 있다. 그늘을 만들어 주는 느티나무하며 이름은 모르겠으나 하여간 예쁜 장미 종류들... 이 정도 규모의 정원을 갖춘 곳이 서울에 잘 없기에, 또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꾼 장미 정원이 서울에 잘 없기에 더욱 마음에 든다.  
6월이라면 장미가 다 지기 전에 한 번 천호동 성당에 가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