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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기+여행기 수다

성 이시돌 목장 -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

by 봄날들판 2022. 11. 30.

얼마 전 제주도 성 이시돌 목장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어요. 
이틀을 푹 있고 나니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목장이라고 해야 하나요... 에는 그전에 여러 번 왔었어요.  
친구차 타고 와서 금악성당에서 미사도 보고 스킨 같은 것을 샀던 기억도 있고  (목장이 있다더니 어디 있는겨...)
일행의 차를 타고 가서 묵주 호수의 길 한 바퀴 돌고 돌아가고 (피정의 집이 있다더니 안 보이는데...)

어느 날은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밤중에 미사를 보고 나서 곧 돌아가고 (아니.. 이렇게 큰 성당이 있었구나....)
그런 식이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른 채 따로따로 기억을 하고 있었어요. 
이번에는 성 이시돌 피정의 집 가까운 곳에서 이틀간 있으면서 만끽하고 왔습니다. (피정의 집에 묵은 것은 아니에요.) 

제주도에서 혼자 여행하다 느낀 건데 제가 바라는 것이 많더라고요.  
사람이 없는 숲길을 호젓하게 걷고 싶지만 그렇다고 인적이 없는 것은 싫고 
바닷가는 해 뜨면 너무 땡볕에 습한데 숲길은 또 너무 우거진 곳은 걸어다니기 불편하지 말입니다.
들개 때문에 혼비백산 놀란 적이 있어서(ㅜ.ㅜ;; ) 들개 나올 만한 곳 피해야 하고요. 

문명과 떨어져 날것 그대로의 제주도를 만나고 싶지만 화장실이나 전기 충전, 비 피할 곳, 이왕이면 카페 정도(--;;) 있으면 좋겠고요. 
대중교통이 다니는 곳이면 했지만 그렇다고 주택가나 시설이 많은 곳은 별로고요.  
억새를 헤치며 힘차게 들판을 나아가고 싶지만 잘 걷는 편이 아니기에 길이 좀 편했으면 했습니다. 

이 모순된 조건들을 채워 주는 곳이 성 이시돌이었어요. 
부지가 넓어서 인적이 적지만 순례자가 계속 오가기 때문에 조용하면서도 안전한 느낌이 들었고 (매우 흡족)
중산간이라 비가 와도 그리 습하지 않고요 곳곳에 그늘진 길도 있고요. 
주로 걷는 길에 아스팔트, 시멘트, 제주의 돌이 깔려 있어서 걷기가 편했고요. 
길 가장자리로 걸으면 바로 흙길이요 길에서 벗어나 오름으로 갈 수도 있고요. 
다니다가 들개는 한 마리도 못 보았어요. 고양이 정도 한 마리 보았군요. 중산간에 사람들이 개를 많이 버리고 간다고 들었는데 목장 안에는 사람이 계속 있고 하니 잘 안 오나 봐요.     
버스가 하루 네 차례 정도 있고요. 동광 로타리에서 카카오택시 금방 불렀는데 택시비 6000원 정도면 오니까 많이 비싼 건 아닙니다. 
비가 와도 지나가는 비는 피할 곳이 많고 비가 많다 싶으면 피정의 집 사무실에 가서 6000원에 우비를 사면 되겠더라고요. 
곳곳에 화장실이 있고 전기충전할 수 있는 곳은 당연히 여러 곳이고 특히 성 이시돌 센터에는 센터 내부에 성물이나 치즈, 잼 등을 파는 매장도 있고요. 카페 이시도르라는 근사한 카페가 있어서 빵에다 아인슈페너 한 잔이면 든든했습니다. 우유부단까지 걸어가서 아이스크림 한 컵이면 부족함이 없고요. 우유는 모두 성이시돌 목장에서 나온 것을 쓰기에 신선하고 맛있었고요. 

저는 이시돌 목장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이시돌 센터를 중심으로 금악성당과 묵주 호수의 길, 십자가의 길, 우유부단까지 왔다갔다하면서 하루를 보냈는데 아마 좀 더 다채로운 제주도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할 거예요. 저는 하루 서너 시간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걷는 것을 원했기에 딱 좋았어요. 
숙소가 이시돌 목장 바로 옆이어서 해뜰 무렵에 한 번 돌고 낮에도 돌고 해지는 것까지 보고 저녁 식사 하고 나서 한밤에 나와서 또 잠깐 산책하고 그러면서 이틀을 보냈습니다. 이틀 모두 각 14킬로 정도 걸었더라고요. 
드넓은 정원을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성 이시돌 목장 곳곳을 소요하던 그 느낌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좋았던 장소는... 
묵주 호수의 길도 당연히 좋았고 임피제 신부님의 묘소에 올라가니 뷰가 좋아서 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바다까지 보여요. 이런 곳을 일구신 신부님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어요.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성이시돌목장, 우유부단 가는 길이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도로 양옆으로 나무가 무성한데요 늦가을에 보니까 그 분위기가 참 멋있었어요. 유명한 사진 포인트인지 신혼부부가 사진도 찍더라고요. 그 시작 지점에 엠마오 가는 길이라고 해서 도로 옆 숲 속에 오솔길이 나 있는데 제주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자아내는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은... 
둘째날 새벽 어스름할 때 우유부단 근처에 있는 목장까지 걸어갔어요.  우유부단이 열기 전이니 전날 그렇게 복작거리던 곳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새벽에 한 사람이 경량패딩에 뜨개모자를 쓰고 걸어오니까 밥 주는 인부로 보였는지 초지 반대편에서 말들이 우루루 저한테 반갑게 달려왔습니다.  (말들아... 미안...)
밥 주는 사람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는 쫌 뜨악해하는 표정을 보인 듯했는데 ^_^
저를 떠나지 않고 목장 끝까지 왕복하는 동안 같이 따라와 주더라고요. 
왕눈이 말들... 말 중에서 대장 말한테 말을 걸곤 했는데, 말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느낌이 문득 밀려듭니다.   

 

 

* 나중에 다시 추가합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가끔씩 떠오르는 이미지는 새벽녘에 아무도 없는 목장에서 걸어다닌 일인데요

광활한데 조용하고 평화롭고... 그런 느낌은 다른 데서는 참 얻기 힘들죠.

그런 경험을 하려면 제일 쉬운 길은 역시 피정의 집에서 묵는 것이겠죠. 

개인 피정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성 이시돌 목장

여자 혼자 여행할 때... 성 이시돌 목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