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8/0518

사순 묵상] 수난 28_오늘(십자가의 두 강도) 수난 28_오늘(십자가의 두 강도)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그분의 옆에 있던 강도는 유일하게 자신이 임금의 옆에서 죽어 가고 있다고 여전히 믿은 사람입니다. 그한테는, 비록 읽을 수는 없어도 십자가의 위에 못 박아 놓은 모욕적인 표현, 즉 ‘유대인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가 정말로 왕가의 기준이었습니다. 강도는 그의 옆에 매달린 이의 나라에는 탑이며 분수와 맛좋은 포도주가 있는 큰 정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키는 이들이 없어서, 금고가 열려 있는 낙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면서 깨끗한 양심으로 모든 것을 훔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그가 잠을 자는 길거리에는 태양의 황금빛 따뜻함이 가득하고, ..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7_그분이 행하고 싶지 않은 기적 수난 27_그분이 행하고 싶지 않은 기적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마태 27,40) 못 세 개를 푸는 것쯤이야 목수의 아들한테는 작고 하찮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작업장에서 그분은 서른 살이 되기까지 나무 다루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에, 나무와 못 사이에 붙들려 계셨습니다. 그분은 냄새와 나뭇결만 보아도 나무가 너도밤나무인지 참나무인지 밤나무인지 구별할 줄 아셨습니다. 나무의 새하얀 조직에 깊숙이 박힌 못 세 개…… 그분이 얼마나 수도 없이 못을 빼고 박았던지요! 그분은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일으키기 쉬운 기적이었을 겁니다. 아예 기적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군중이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6_그 말씀 몇 마디로(가장 마음에 드는 글)   수난 26_그 말씀 몇 마디로(가장 마음에 드는 글)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그 위에서 그분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말씀을 하실 수는 있었지요. 군중한테 말씀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들이 더 이상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중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악담을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는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이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그 일’은 하실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벌에서 구할 수 있으셨습니다. 죽어 가는 어깨로 폭풍우 속에 있는 그들에게 피난처를 주실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5_아침 아홉 시 수난 25_아침 아홉 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마르 15,25) 이천 년 동안 그날 아침 아홉 시는 모래시계 속에 여전히 멈추어 있었습니다. 이천 년 동안 우리는 그 아홉 시를 우리의 눈길 아래, 그리고 손가락 아래 두었습니다. 캔버스에, 은에, 나무에, 나전에 새겼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부터 그 십자가의 삼각형은 마치 달이나 깃발이나 숟가락이나 바퀴처럼 일상의 감각 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의 집안의 배지 안에서 삽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보이지 않는 어떤 이가 그것을 우리 입술에 대어 줄 것입니다. 차가운 광택이 나는 그 모양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랑을 바칠 물건입니다. 그분은 늘 거의 조용함과 익숙함 속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2018. 5. 24.
신부님의 시] 성모님 곁에 서서 청하는 기도 성모님 곁에 서서 청하는 기도 예전에 오월이면 레지오 마리애에서 활동하는 친구를 위해 성모님에 관한 시를 찾곤 했어요. 성모의 밤에 읽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중에 하나 찾았던 시가 오늘 소개하는 시입니다. 성모의 밤에 낭독하기에는 좀 슬프기는 하지만, 성모님을 찬미하는 시와 약간 분위기가 다르기에 또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라는 책은 이냐시오 영성 연구소에서 나왔는데 이 책은 예수회원들이 쓴 기도시를 꾹꾹 눌러 담은 아름다운 책입니다. 유신재, 김두현 신부님이 수사일 때 번역한 책입니다. 이 기도문의 저자는 복자 미구엘 아우구스틴 프로 신부님으로, 멕시코에서 1927년 사형당했고 1988년 시복되었습니다. 성모님 곁에 서서 청하는 기도 오 어머니, 고독과 깊은 슬픔에 잠긴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 당신.. 2018. 5. 18.
어느 숲의 기억 어느 숲의 기억 내가 자란 곳은 집 바로 뒤에 아주 넓은 밤나무숲이 있었다. 겨울부터 여름까지 맨들맨들한 밤나무 가지에서 매달리기를 하며 동네 언니오빠들과 놀았고 가을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작은 심부름을 하곤 밤 몇 톨을 얻었다. 날씨가 좀 풀리고 딱히 농사일 거들 게 없는 이월에서 삼월 사이에 판자를 구해다가 집을 짓고 엄마아빠 역할놀이 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찍 혼자된 밤나무집 할머니는 혼자 그 땅을 일구고 아들도 서울 유명 사립대에 보냈다. 근방에서 퍽 드문 일이었다. 민선 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선거 열풍이 불자 아들은 선거에 나갔다. 그리고 연거푸 선거에 떨어졌다. 숲은 어느새 서울 사람 것이 되었다. 그게 중학교 입학 무렵이었다. 그리고 언제 갈아엎을지 몰라 아무도 가꾸지 않는 밤나무.. 2018. 5. 17.
사순 묵상] 수난 24_눈먼 소(키레네 사람 시몬) 수난 24_눈먼 소(키레네 사람 시몬) “그들은 나가다가 …… 사람을 보고”(마태 27,32) 어깨에 붉은 주름이 있는 이 거무스름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행렬과 반대 방향에서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예수님과 ‘반대’였습니다. 피부의 색깔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뭐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아 한 ‘생각’의 색깔까지도요. 키레네 사람 시몬은 메시아이자 구세주이신 분과 관련된 예언적 관심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유다인 사건과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에서 전체적으로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한테 유일한 나라는, 식탁보보다 그리 크지 않은 농장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그곳에서, 저녁이 되어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이 잔디와 그에서 불어온 밭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 2018. 5. 17.
사순 묵상] 수난 23_오케스트라(예수님과 여인들) 수난 23_오케스트라(예수님과 여인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루카 23,27) 그날에 예루살렘의 모든 여인들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절대 가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병사들을 무서워하는 법도 없습니다. 어머니들은 아들이 겪는 수난에 울음과 울부짖음이 뒤섞인 악보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음악이 필요하며, 삶에 보내는 인사를 연주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천 년간 그래 왔지요. 여인이자 어머니들은, 그 고통을 연주하는 악기들은 십자가 뒤에 그들의 소박한 오케스트라를 세웠습니다. 소리치던 그 나이 든 여인들은 클라리넷이었고, 후덕한 과부는 오보에였으며, 소녀들은 하프요, 그녀들을 응원하던.. 2018. 5. 17.
사순 묵상] 수난 22_곤충(십자가의 길) 수난 22_곤충(십자가의 길)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요한 19,17) 이제 그분이 가야 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것이 여느 십자가가 아니라 그분 자신의 십자가라는(다리 저는 저 소년이 나의 아들이고 암에 걸린 저 나이 든 여인이 나의 어머니인 것처럼) 자각을 진 채 그분의 발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나무 조각이 아니라 우리 몸의 조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살과 뼈가 모인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숙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사람과의 논쟁이 끝났습니다. 그분을 구하려고 하거나 그분을 팔아 버리려고 하거나 그분을 잃어버리게 된 비겁함과 배신과 부정과 책략의 상호 작용이 모두 끝났고, 완전히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야외에 있습니다. 하늘이 넓습니다. 여윈 염소 떼가 길을 막거나, .. 2018.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