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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영성115

사순 묵상] 수난 30_어둠에 싸인 세 시간 수난 30_어둠에 싸인 세 시간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마르 15,33) 이 시간에 어둠이 덮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장면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누구도 새로이 고문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여전히 그분의 옷을 가지려고 주사위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수난은 슬픈 예상 속에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죽음 속의 죽음이었습니다. 오후 세 시까지 그 세 시간 동안 그분은 더 나쁜 고문자와 씨름하고 계셨습니다. 더 소름끼치는 소멸을 거치고 계셨습니다. 정원에서처럼 다시 이 무서운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수천 배는 더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그분의 선함과 사람의 악의가, 잘 자란 옥수수밭 그..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9_또 다른 천국 수난 29_또 다른 천국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 보시고”(요한 19,26) 그분은 자신이 지은 범죄로 내리눌려 죽어 가는 남자에게 낙원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끝나 버렸을 때는, 심장이 멈추고 있는 이에게, 두 눈이 감기고 있는 이에게 낙원을 주는 것은 쉽기만 합니다. 세상이 스스로를 지워 내고 그것의 발톱을 우리로부터 치울 때, 그 꿈으로 자유로이 돌아간 영혼은 이미 낙원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일지라도 낙원이라는 그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이곳 아래서 찾고자 애썼습니다. 우리의 낙원은 얼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와 시간이라는 사막 사이의 얼굴로, 누구네 집의 불가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다른 사람의 몸이..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8_오늘(십자가의 두 강도) 수난 28_오늘(십자가의 두 강도)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그분의 옆에 있던 강도는 유일하게 자신이 임금의 옆에서 죽어 가고 있다고 여전히 믿은 사람입니다. 그한테는, 비록 읽을 수는 없어도 십자가의 위에 못 박아 놓은 모욕적인 표현, 즉 ‘유대인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가 정말로 왕가의 기준이었습니다. 강도는 그의 옆에 매달린 이의 나라에는 탑이며 분수와 맛좋은 포도주가 있는 큰 정원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키는 이들이 없어서, 금고가 열려 있는 낙원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면서 깨끗한 양심으로 모든 것을 훔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그가 잠을 자는 길거리에는 태양의 황금빛 따뜻함이 가득하고, ..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7_그분이 행하고 싶지 않은 기적 수난 27_그분이 행하고 싶지 않은 기적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마태 27,40) 못 세 개를 푸는 것쯤이야 목수의 아들한테는 작고 하찮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작업장에서 그분은 서른 살이 되기까지 나무 다루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에, 나무와 못 사이에 붙들려 계셨습니다. 그분은 냄새와 나뭇결만 보아도 나무가 너도밤나무인지 참나무인지 밤나무인지 구별할 줄 아셨습니다. 나무의 새하얀 조직에 깊숙이 박힌 못 세 개…… 그분이 얼마나 수도 없이 못을 빼고 박았던지요! 그분은 그 일을 하는 방법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일으키기 쉬운 기적이었을 겁니다. 아예 기적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군중이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6_그 말씀 몇 마디로(가장 마음에 드는 글)   수난 26_그 말씀 몇 마디로(가장 마음에 드는 글)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그 위에서 그분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말씀을 하실 수는 있었지요. 군중한테 말씀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들이 더 이상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중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으로 악담을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께는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이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할 수 없었지만, ‘그 일’은 하실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벌에서 구할 수 있으셨습니다. 죽어 가는 어깨로 폭풍우 속에 있는 그들에게 피난처를 주실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5_아침 아홉 시 수난 25_아침 아홉 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마르 15,25) 이천 년 동안 그날 아침 아홉 시는 모래시계 속에 여전히 멈추어 있었습니다. 이천 년 동안 우리는 그 아홉 시를 우리의 눈길 아래, 그리고 손가락 아래 두었습니다. 캔버스에, 은에, 나무에, 나전에 새겼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부터 그 십자가의 삼각형은 마치 달이나 깃발이나 숟가락이나 바퀴처럼 일상의 감각 속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이의 집안의 배지 안에서 삽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흐릿해지는 시야 너머로 보이지 않는 어떤 이가 그것을 우리 입술에 대어 줄 것입니다. 차가운 광택이 나는 그 모양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랑을 바칠 물건입니다. 그분은 늘 거의 조용함과 익숙함 속에 서 있습니다. 지금은.. 2018. 5. 24.
사순 묵상] 수난 24_눈먼 소(키레네 사람 시몬) 수난 24_눈먼 소(키레네 사람 시몬) “그들은 나가다가 …… 사람을 보고”(마태 27,32) 어깨에 붉은 주름이 있는 이 거무스름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행렬과 반대 방향에서 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예수님과 ‘반대’였습니다. 피부의 색깔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뭐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아 한 ‘생각’의 색깔까지도요. 키레네 사람 시몬은 메시아이자 구세주이신 분과 관련된 예언적 관심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유다인 사건과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에서 전체적으로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한테 유일한 나라는, 식탁보보다 그리 크지 않은 농장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그곳에서, 저녁이 되어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이 잔디와 그에서 불어온 밭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 2018. 5. 17.
사순 묵상] 수난 23_오케스트라(예수님과 여인들) 수난 23_오케스트라(예수님과 여인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루카 23,27) 그날에 예루살렘의 모든 여인들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절대 가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병사들을 무서워하는 법도 없습니다. 어머니들은 아들이 겪는 수난에 울음과 울부짖음이 뒤섞인 악보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음악이 필요하며, 삶에 보내는 인사를 연주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천 년간 그래 왔지요. 여인이자 어머니들은, 그 고통을 연주하는 악기들은 십자가 뒤에 그들의 소박한 오케스트라를 세웠습니다. 소리치던 그 나이 든 여인들은 클라리넷이었고, 후덕한 과부는 오보에였으며, 소녀들은 하프요, 그녀들을 응원하던.. 2018. 5. 17.
사순 묵상] 수난 22_곤충(십자가의 길) 수난 22_곤충(십자가의 길)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요한 19,17) 이제 그분이 가야 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것이 여느 십자가가 아니라 그분 자신의 십자가라는(다리 저는 저 소년이 나의 아들이고 암에 걸린 저 나이 든 여인이 나의 어머니인 것처럼) 자각을 진 채 그분의 발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나무 조각이 아니라 우리 몸의 조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살과 뼈가 모인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숙명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사람과의 논쟁이 끝났습니다. 그분을 구하려고 하거나 그분을 팔아 버리려고 하거나 그분을 잃어버리게 된 비겁함과 배신과 부정과 책략의 상호 작용이 모두 끝났고, 완전히 끝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야외에 있습니다. 하늘이 넓습니다. 여윈 염소 떼가 길을 막거나, .. 2018. 5. 17.